14일(목) 열린 ‘책으로 만나는 영화 ‘벌새’ 이야기’ 북콘서트
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벌새’를 찍으며 상기하려 했던 문장은 ‘내 마음을 부수는 것을 써라’예요. 부수는 걸 쓰고 나면 그 감정으로부터 통과가 돼요. 들여다보면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처럼요. 여러분도 마음을 가장 찢어놓는 게 뭐냐고 물으면 다양한 대답을 하실 거예요.”

독립영화 ‘벌새’(2019)의 김보라 감독이 14일 오후6시 <책으로 만나는 영화 벌 새 이야기> 북콘서트에 초대 손님으로 참여했다. 북콘서트가 진행된 ECC B146호는 벌새 단행본을 손에 쥐고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200석이 3시간 만에 선착순 마감될 만큼 인기였던 이번 북 콘서트는 김 감독의 강연과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박수와 환호성으로 김 감독을 뜨겁게 맞이한 학생들은 김 감독의 말에 귀 기울이며 반응했다. 김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어떻게 창작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그는 “벌새의 오프닝은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의견을 들어야 하는 순간과 안 들어야 하는 순간을 창작자로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문장을 강조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면 어떤 글이든 호소력이 있어요. 그냥 리포트를 쓸 때조차도 어떤 식으로 글을 쓰냐에 따라 딱딱해지기도, 러브레터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벌새를 쓰면서도 부끄럽지 않게 영혼을 갈아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대부분 창작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그 영화의 구조를 멋지게 구상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창작은 파편화된 무엇에서 시작돼요. 저는 학교 다닐 때 아파트 차가운 금속 문고리를 열고 아무도 없는데도 항상 집안을 둘러본 기억이 있어요. 엄마 방 옷장을 열어서 냄새를 맡거나 화장품을 뒤졌어요. 영화에서도 은희가 똑같은 행동을 해요. 이런 기억의 조각들이 벌새를 만들어가는 원료가 된 거예요.”

김 감독은 글을 쓰고 싶은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법 중 하나로 ‘즉흥적 글쓰기’를 제안했다. 그는 “편집 없이 글을 쓰거나 생각나는 주제를 쓰는 게 중요하다” 며 “수업 때 학생들에게 생애 첫 기억을 많이 쓰게 했는데, 이걸 쓰면 어떻게 생을 바라보는지 잘 정리된다”고 말했다.

김보라 감독이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이후 사회를 맡은 김지혜 교수(호크마 교양대학)가 사전 질문 세 가지와 즉석에서 받은 질문을 김 감독에게 물었다. 왜 무너지는 성수대교를 바라볼 때의 시간이 새벽인지, 병실이란 공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 인생에서 영지 선생님은 어떻게 찾는지 등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중엔 영화 굿즈인 벌새 티셔츠를 입은 학생도 눈에 띄었다.

한 학생이 ‘영화에서 울고 싶을 캐릭터는 여성 캐릭터인데 대조적으로 남성 캐릭터가 우는 장면만 나오는 이유가 있는지’ 묻자 김 감독은 “이런 맥락 없는 울음이 어디에서 기인했나 생각해보니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들인 것 같다”며 “영화의 여성들은 자신의 것을 감내하고, 울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면모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북콘서트에 참여한 박윤하(특교·17)씨는 “영화를 본 관객으로서 은희가 되고 싶었고, 영주가 되고 싶었다”며 “이 세계관을 제 삶에서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사인을 받으려 줄 서 있던 이수영(소비자·16)씨는 “질문도 답도 너무 좋아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며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감독님이 지성인이라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감독님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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