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으로 사회가 뜨겁다. 법무부는 하루가 멀다하고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어제(14일)는 검찰 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상황을 사전 보고한다는 골자의 안이 나왔다.

검찰 권력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쏟아내는 개혁안을 보고 있자면 한편으로는 답답한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 나온 개혁안 중 검찰 내 성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안은 왜 없는지 의문이 들어서 그렇다. 올해 여성들이 모여 외쳤던 성폭력 검찰 규탄 시위를 보고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국 첫 미투(#MeToo) 운동은 부끄럽게도 검찰로부터 시작됐다. 서지현 검사는 ‘안태근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한 뒤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고, 이는 곧 한국을 뒤흔들었던 미투(#MeToo)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당시 서 검사는 성추행 사건 후 검찰청 간부를 통해 사과받기로 예정돼있었으나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채 무려 ‘검찰 총장’의 경고를 받았다. 이후 여주 지청에서 통영지청 수석검사로 발령이 났다. 보복성 좌천 인사다. 그때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였던 임은정 검사는 이 상황을 SNS에 업로드했다가 검사장으로부터 “왜 상황을 들쑤시냐”는 비난도 받았다고 한다.

서 검사는 “이 고발로 검찰이 개혁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안태근 개인의 잘못으로 왜 검찰 개혁까지 논하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범죄 고발을 이유로 검찰 총장의 경고를 받고, 보복성 인사를 당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개인의 잘못으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검찰 조직 내부의 단단한 남성 연대가 검찰 내 성범죄를 묵인하고 성 평등하지 않은 조직을 만든 거다.

법무부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가 작년 법무부·검찰청 근무 여성 8194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여성 구성원의 61.6%가 성희롱,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여성 검사 중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말한 인원은 70.6%나 된다. 여성 검사의 82.3%는 여성에게 불리한 법무부 내 조직 문화가 있다고 응답했다.

검찰 내부 성범죄도 묵인하는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별장 성매매’ 김학의 전 차관이 성폭행 혐의가 빠진 뇌물죄 혐의로만 기소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뇌물죄로만으로도 충분히 구속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명으로는 충분한 설득이 되지 않는다.

성범죄 영상을 음란물 유통 사이트에 올렸지만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경 우도 많았다. 작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음란물 유통 사이트 업로더들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그 중 45.7%, 절반이나 기소하지 않았다. 파워 업로더가 아닌 초범이고, 반성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황당한 이유로 말이다.

이 사건 중 하나의 예시를 들자면, 피해자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나체 사진을 찍은 가해자에 대해서 검찰은 “고소인이 정말 성폭행 당할 것이 두려웠다면 신고를 했어야지 나체로 엎드려 울고 있었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불기소 이유 통지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성폭력 상황에 처한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가해자 중심적인 사고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나만 전쟁이야.”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이 울며 외쳤던 대사가 떠오른다. 검찰 내 성범죄도 막지 못하고, 성범죄 가해자 중심 수사를 한다고 비판받는 검찰. 심각성을 느끼는 사람이 피해 당사자인 여성밖에 없는 것인가.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 검사 미투(#MeToo) 고발 때는 검찰 내 성범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혁신 과제에 추가하라고까지 말했다. 지금이 진정으로 검찰 내 남성 카르텔의 해체와 ‘성평등 검찰을 위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말뿐인 약속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새롭게 추가되는 검찰 개혁안을 유심히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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