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경향신문 기자(불문·00년졸)
정유진(불문·00년졸) 경향신문 기자

입사 면접 그리고 좌절, 다시 입사 면접 그리고 좌절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던 나날이었다. 실패가 계속될수록 예상 면접질문과 모범답안 준비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같은 스터디 멤버들과 서로 질문과 답안을 검토해주기도 했다. 그때 내가 꼽았던 예상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자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뭔가?”

나는 ‘빨간머리 앤’이라고 대답하려 했다. 어떤 심오한 깨달음을 준 책이어서 라기보다는, 그게 정말 솔직한 내 대답이었으니까. 어릴 때 친구에게 빌려읽은 시리즈 전권이 너무 갖고 싶어 열심히 돈을 모아 사자마자 제일 앞장에 크게 궁서체로 적어놓기도 했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고.

다들 알겠지만, 빨간머리 앤은 나중에 길버트와 결혼하고 그들이 낳은 자식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긴 전집이 있다. 나는 나보다 빨리 나이를 먹어가는 소설 속 내 친구 ‘앤’을 통해 처음으로 한 여성의 삶을 통째로 대리 경험해 볼 수 있었는데, 그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꽤나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른 스터디 멤버들은 내 대답을 듣더니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 갖고 되겠어? 너무 깊이가 없어 보일 것 같은데….” 나는 “왜? 솔직한 대답이 가장 좋은 대답 아닌가. 오히려 참신하지 않아?”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마음이 흔들렸고, 동료 한 명이 가르쳐 준 모범답안을 베껴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던 한 프랑스 사상가의 책으로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어느 면접관도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결국 신문사에 합격해 기자가 되는데 성공했으니 어쨌든 다행이었던 건가.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자가 된 후부터 나의 독서 생활은 불행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는 깊이가 있어 보이기 위해 목적이 명확한 독서만 하기 시작했다. 교육부를 출입할 때는 교육에 관한 책을 읽었고, 복지부를 출입할 때는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책을 읽었다. 서울시청을 출입할 때는 도시에 대한 책을 읽었으며, 국제부에 있을 때는 국제 정세에 대한 도서 리스트를 뽑아 줄 쳐가며 읽었다. 이렇게 말하면, 학구열 강한 기자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상은 한 달에 한두 권 읽을까 말까한 책을 오로지 ‘써먹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했다는 데 있다. 써먹기 위한 독서는 정말 신기하게도 써먹고 나면 금세 휘발돼 버린다.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웠던 교과서 내용이 대학 입시가 끝나자마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문화부 출판 담당을 오매불망 소원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돈 받고 하는 일이 책 읽는 것이라니 얼마나 행복할까. 날마다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나의 지적 깊이는 더욱 깊어질 테고, 얄팍함을 감추기 위한 얄팍한 독서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그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분명 즐거운 지적 경험이긴 했지만, 25매 분량의 서평 기사 마감을 맞추기 위해 새벽까지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동시에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나는 ‘써먹기 위한 독서’의 굴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란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치게 됐다. 나의 독서 생활이 왜 불행해졌는지 너무도 명쾌한 이유를 그 책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70~80년대 일본 사전계의 양대 거성이었던 야마다 다다오와 겐보 히데토시가 만든 국어사전에 대한 이야기다. ‘국어사전은 문명비평’이란 신념을 갖고 있었던 야마다 선생은 단어의 표면 뒤에 숨겨진 이면의 의미까지 뜻풀이에 담아내려 했다.

예를 들어 그가 국어사전에서 풀이한 동물원의 의미는 이렇다. ‘생태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한편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잡아온 조수·어충 등에게 좁은 공간에서 생활할 것을 강요하며 죽을 때까지 기르는 인간 중심의 시설’. 그렇다면 그가 정의한 독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연구나 조사 때문이거나 흥미 본위가 아니라 교양을 위해 책을 읽는 일. 드러누워 읽거나 잡지를 읽는 일은 본래의 독서에 포함되지 않는다’.

연구나 조사 때문, 다시 말해 ‘써먹기 위해’ 읽는 것은 독서가 아니라는 야마다 선생의 죽비소리가 귓등을 때리는 듯 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기자가 되고나서 내가 진정한 의미의 독서를 한 것은 대체 몇 권이나 될까.

물론 우리는 연구와 조사를 위해서도 책을 읽어야 한다. 얄팍한 깊이의 지식으로 아는 척 하지 않으려면 사실 지금보다 더 많이 읽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의 양식은 지식과 정보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당장 써먹을 데가 없는 소설이나 시도 많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무엇보다 ‘감정교육’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공감할 수 있도록 돕고, 나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훌륭한 선생님.

참고로 내가 면접에 써먹기 위해 샀던 그 프랑스 사상가의 책은 아직도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는데, 무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독을 하지 못했다.

정유진 경향신문 기자

*본교 불어불문학과를 2000년 졸업한 뒤 2002년 경향신문사에 입사했다. 사회부, 경제부, 국제부, 문화부 등을 거쳐 현재 정책사회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유진의 사이시옷’ 기명칼럼을 연재했고 지난 여름까지 서평기사를 담당했다. 「10년 후 세계사」의 공저자이며, 「분열하는 제국」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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