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어딘가에 도착하고 싶어 불안했던 나의 이십 대

변선영(중문·10년졸)한화인재경영원 기획팀
변선영(중문·10년졸)
한화인재경영원 기획팀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20년간의 긴 수형생활 동안 스쳐간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책을 읽다 마음에 닿는 구절이 있으면 밑줄부터 긋는 버릇이 있는 나는 어김없이 펜을 들어 굵은 밑줄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내가 어떤 사안에 대해 특정한 견해를 갖게 되거나, 내게 닥친 일들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과정들 속에서 ‘과거의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생각을 해왔기에 지금의 내가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걸까?’ 가만히 되짚어 보곤 한다. 확실히 ‘오늘의 나’는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 그리고 다양한 인연들과의 만남과 깨달음의 결론임이 틀림없다.

내 머리 속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과 항상 비슷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커넥티드 닷츠(Connected dots)’이다. 인생은 점과 점이 연결되고, 그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것과 같아서 과거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만남, 뜻 모를 경험과 사건들이 모여 언젠가 때가 되면 새로운 관계와 기회의 출발점이 되어 준다는 말. 결국 나의 오늘은 과거에 내가 찍어 놓은, 혹은 지금의 내가 아무 의미 없이 찍어 가고 있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한다는 이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돌아보면 나의 이십 대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어딘가에 도착하고 싶은 막연한 불안감에 무작정 고양이에게 길을 물어보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아 여러 갈래 길들을 기웃거렸고,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되돌아 온 날도 수차례였으며, 괜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게 무서워 발걸음조차 떼지 못한 길도 수 없이 많았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시절의 나는 미래를 알 수 없는 그 ‘불안’을 동력으로 이런저런 점들을 참 열심히 찍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찍은 점들이 꼭 내가 그려둔 밑그림대로만 연결되는 것도 아니더라는 사실이다.

대학시절 기자가 되고 싶었던 나는 중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언론정보학 수업으로 시간표를 빼곡히 채웠고, 학보사에 들어가 5학기의 임기를 채웠고, 퇴임 후에는 외부 언론사 인턴기자의 경험도 쌓았으며, 교내 언론고시반에 들어가 이런저런 언론고시 스터디에 나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첫 사회생활의 출발점은 내가 준비해 오던 길과 전혀 다른 곳에서 찍게 됐다. 언론사 인턴기자 시절 배당 받은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인터뷰를 했던 한 기업 홍보팀장님과의 미팅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연이 닿았고, 졸업 후 공채 과정을 통해 그 회사의 홍보팀원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대학시절 ‘기자’ 외의 직업은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기업 홍보팀에서의 경험과 성취들에 의외의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또 3년차 때에는 광고홍보를 전공으로 일과 병행해 대학원에 진학해 이 분야에 대해 좀 더 공부를 깊이 해볼 기회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렴풋하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막연한 미래를 앞에 두고 확고한 목표를 위한 확실한 점 하나를 찍어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과거의 점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가치 있게 잘 연결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말이다.

2010년 첫 사회생활을 시작으로 8년차 때에는 또 우연한 기회와 만남을 통해 평소 관심이 있던 ‘HR’ 쪽에 인연이 닿아 인재경영원에서 새로운 업무를 경험해 보기도 했다. 또 올 10월부터는 12월 출산을 기다리며 육아휴직이라는 인생의 큰 점도 감사한 마음으로 찍어가고 있다. 내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면 또 어떤 일들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나는 또 어떤 점을 찍어가고 있을지 사실 지금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4차산업혁명, 디지털, 플랫폼 등 다양한 외부 조건들이 나로 하여금 내가 계획하지 않은 새로운 점들을 찍게 만들어갈 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중반이 되면 나는 아주 명확하고 확실한 길만을 걷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사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불안했던 대학시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시간을 통해 얻게 된 소중한 깨달음은 때로는 실패인 줄 알았던, 때로는 미로에 빠진 것 같았던 그 길들이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다 내가 찍어온 점들로 완성된 나의 길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삶 속에서 무의미한 경험은 없다. 무가치한 일과 만남도 없다. 때가 되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찍고 있는 무수한 ‘점’들이 곧 ‘삶의 길’을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변선영(중문·10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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