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어도 잘못된 것에 목소리 높이는 이화인 되어야

인헌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교사의 지속적인 특정 이념 주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도 교사의 학생부 작성이 마감된 직후였다. 얼마나 담임교사에 의한 학생부 기록상의 불이익이 걱정됐으면 그랬을까. 애초 기자회견장에 나타나기로 했던 회원 학생들은 모습을 감추고 학생대표와 대변인 학생만이 등장했다. 변호사까지 대동했다. 막판에 부모님들과 벌인 실랑이가 눈에 선하다. 대학 입시를 앞둔 시점에 교사집단으로부터 찍히는 걸 막아보려는 치열한 부모 마음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인헌고 학생 성명이 있었던 10월 23일은 한국 교사들이 모두 무너진 날이다. 전교조 선생이건 반전교조 교사이건, 대학교수건 상관없다. 그냥 미안하다. 이런 나라를 만들려고 선조들이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을 했던가. 이런 모습을 보이려고 선열들이 휴전선에서 전사했던가. 노동자와 기업인이 피땀 흘려 이룬 한강의 기적이 무슨 소용인가. 소득주도성장과 성장지향 정책 간의 탁상논쟁이 무슨 소용인가. 상식이 지배하는 학교 환경 하나 만들지 못하면서 누굴, 무엇을 가르치려 했던가.

그동안 사상주입에 취약한 초중고교 학생들이 이념 편향적 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음을 왜 주목하지 못했나. 또 다른 형태의 "도가니" 상황이 연상된다. 이미 특정 이념단체가 교육계를 지배한지 오래다. 그런데도 취약한 연령의 학생들이 밖으로 떠들지 못하는 걸 위안 삼듯이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이 문제를 방기해 버린 건 아닌가. 사상을 주입하려 한 교사나 나나 똑같다. 그동안 수많은 신문 기고문을 쓰면서도 정작 이 문제에 주목하지 못한 나부터 한없이 부끄럽다. 학생들의 양심선언이 과장됐든 아니든 상관없다. 지금은 모두가 한없이 무너진 날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조국 법무 장관 임명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조국을 장관직에서 36일 만에 끌어내린 힘은 집단주의 감성을 누른 자유의 이성이다. 검찰개혁 핑계를 앞세우고 생일 케이크 상자를 든 가장의 짠한 뒷모습까지 연출하는 감성 전이 상식과 공정가치를 지킨 국민 다수의 일반 이성까지 흐리진 못했다. 6,200명 대학 교수들이 조국 임명반대 시국선언에 서명한 건, 386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자유와 인권은 무한정 옹호하면서 국민들의 자유는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사고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다. 이화여대에서도 127분의 교수님이 여러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취지에 실명으로 동참했다. 대학생들의 참여 또한 맹렬했다. 서울대, 고대, 연대 등 소위 SKY 대학은 공동집회를 통해 조국 퇴진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서울대는 아직도 조국 교수 복직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정권 말기 정유라 부정 입학 문제를 끝까지 제기해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연결한 장본인은 우리 이화 학생들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자녀를 편법입학 시키고, 그 자녀의 논문 제1저자 등록은 공식취소 된 상태인 장본인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국가개혁을 외치는 상황에 반대하는 투쟁은 이화 학생들이 외면한 채 지나가 버렸다. 정유라는 이화와 직접 연관된 경우고 조국 딸은 그렇지 않아서 이화 학생들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이니 나서지 않았던 것일까. 검찰의 신상 털기가 싫어서라면, 조국의 딸의 경우만 신상 털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는가.

인헌고 대표학생 말처럼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한다. 지금은 너나 나나 때아닌 자유화 투쟁을 벌이는 시대다. 21세기에서 보수 친일 괴물을 잡겠다고 나서며 스스로가 더 큰 전체주의 괴물이 되는 집권 세력 및 이념집단들로부터 상식과 자유를 지키고 우리 사회가 위선과 거짓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교수, 의사, 공무원, 학생들까지 나서는 자유화투쟁 시대다. 이화의 정신은 그걸 외면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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