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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의 마음」(소설)

-이수진(독문·15) 

 

 

눈을 떠보니 어김없이 뿌리 끝이 축축했다. 이게 벌써 몇 주째다. 아마 인간은 이 심정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 종일 절대로 마르지 않는 젖은 양말을 신고 지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내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까.

 

요즘 보면 주인은 내가 선인장이라는 것을, 그것도 햇볕이 뜨겁고 건조한 멕시코에서 태어난 선인장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주인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분명 한 달에 한 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선물한 남자는 이 집에 처음 나를 내려놓을 때 분명히 말했었다.

 

“물은 한 달에 한 번씩만 주면 돼. 그것도 여름 얘기고, 겨울에는 거의 안 줘도 된대. 잊고 지내다 기억이 날 때쯤 흙 만져보고 건조하면 한 번씩 주고 그래.”

 

그 다음으로 주인에게 나를 건네면서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여서 내보낸다는 주인이라도 나라면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푸르른 것 하나 없이 하얗기만 한 이 네모난 방에 내가 좋은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 남자가 틀렸다. 나의 주인이라는 인간은 식물 중 가장 관리하기가 쉽다는 나를 보기 드문 의지로 죽이려 하고 있다. 마치 남자의 예상을 보란 듯이 뛰어넘기라도 하겠다는 듯, 지속적이고 난폭한 의지다. 

 

주인은 요즘 하루에 한 번 내게 물을 뿌린다. 아침에 눈을 뜨고, 내가 놓여 있는 책상 옆 침대에서 일어나면 책상 뒤로 나있는 창문을 연다, 그리고는 내게 물을 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면 그 물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흙을 적시고, 내 뿌리로 스며든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 흙의 물기가 나를 깨운다. 아, 이 기분도 아마 인간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비몽사몽한 아침에 누가 머리 아래에 있던 베개를 물 한 바가지로 바꿔놓은 느낌이라고 말한다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이런 생활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계속되고 있다. 나는 연못에 사는 식물도 아니고, 늪지대에 사는 식물도 아닌데 몸의 하반신이 눅눅히 적셔진 채 살고 있다. 이러다가는 곧 물기가 몸 전체를 타고 올라와 영영 먹먹함 속에 잠길 것만 같다. 

 

매일 아침 우울해질 때면 나는 고향을 생각한다. 언제나 햇빛이 쨍쨍하고 건조한 멕시코 중앙 고원지대. 내 고향에는 노르스름하고 푸르른 것들 밖에 없다. 노란 건 햇볕에 잘 그을린 흙이고, 푸르른 것은 건조한 땅을 비집고 자라난 키가 작은 잔풀들과, 이파리만 난 나무들 그리고 나와 같은 선인장들이다. 공기에서는 하루 종일 마른 흙냄새가 나고, 너무 건조해서 땅이 쩍쩍 갈라질 때쯤이면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와 목을 적셔준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언제나 적당히 꼭 필요한 만큼만 내린다.  

  

반대로 주인은 적당히, 라는 말을 모르는 인간 같다. ‘적당히’라고 함은 정도에 알맞게 하는 것, 예를 들면 내 화분에 꽂혀있던 ‘난봉옥 선인장. 물은 한 달에 한 번씩’이라고 적혀 있던 종이 팻말의 글씨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종이 팻말은 이제 화분에서 사라지고 없다. 이미 삼주 전쯤 힘없이 젖어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정말 이상한 점은 한두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인이 이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은 내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고, 어떤 때에는 물주는 것도 잊고 지냈다. 그래.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 주인이 나를 잊었을 때에는 뿌리가 항상 말라 있었고, 숨은 더 잘 쉴 수 있었다. 사실 요즘 같은 겨울은 선인장에게 물이 필요 없는 시기다. 그런데 주인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변하기 시작하더니, 내게 물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봉옥아- 목 마르지? 물 줄게.” 

 

그 전까지 나는 이름도 없던 몸이었다. 그 일이 별로 섭섭하지는 않지만, 나를 봉옥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이상하다. 주인은 내게 이름을 붙여주면서 스스로 대단한 애정을 줬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멕시코에서 온 난봉옥 선인장. 그러니까 내 이름을 봉옥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주인은 정씨니까 정인간 쯤이 되겠다. 그러면 내 소개는 이렇게 된다. 나는 멕시코에서 온 난봉옥 선인장, 봉옥. 정인간이 키우는 유일한 식물이다. 

 

 

*

한동안 안 그러는 것 같더니 주인이 다시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존재다. 방금 전에는 글쎄 이 주인이란 인간이 갑자기 내 몸을 꽉 쥐는 것이다. 당연히 주인의 손은 엉망이 되었다. 인간은 난봉옥 선인장에게 가시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나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 난봉옥 선인장의 몸에는 가시가 없는 대신 희고 자잘한 비늘이 나있다. 이 비늘도 손바닥에 박히면 가시만큼 아프다. 오히려 더 작고 얇아서 빼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 번 박히면 가시보다 더 성가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소리다. 그걸 몰랐던 주인이 바보다. 아니면 바보가 되고 싶은 건가. 그 다음 주인의 행동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주인은 비늘 박힌 손을 얼마간 쳐다보더니, 마치 내게 배신당했다는 듯 오랫동안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는 엉엉 울었다. 비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길고 서러운 울음이었다.

 

“가시가 없어? 입만 열면 다 거짓말이지. 생각해보면 넌 약속을 지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나쁜 새끼.”

 

아무리 말 못하는 식물이라지만, 무턱대고 욕을 들으면 억울하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시가 없었을 뿐더러 입도 없고, 주인과 그 어떤 약속을 한 적도 없다.

 

“물을 아무리 주면 뭘 해. 쑥쑥 크기는커녕 죽었는지 살았는지 티도 안 나는데. 봉옥이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니. 따로 바라는 게 있으면 말을 해.”

  

이건 확실히 나한테 하는 소리다. 하지만 이번에도 억울하다. 선인장은 원래 빠르게 자라는 식물이 아니다. 이건 선인장을 키우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언제나 묵묵히 생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몸, 선인장이다. 

 

 

전에 있던 꽃집의 여자사장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잘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크니까, 식물을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한테 제격인 식물이라고. 남자는 내 앞에 서서, 살지 말지를 꽤 오래 고민하더니 그 소리를 듣고 나를 이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니까 나는 식물전문인간이 인정한 독립적인 식물. 돌보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크는 씩씩한 식물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인장인 나를 포함, 인간이 애를 쓴다고 더 빨리 자라는 식물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런데도 내 탓을 한다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나라고 주인이 답답하지 않은 게 아니다. 가끔은 정말 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우선 왜 그렇게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해 안달이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바라는 것 또한 없으니 내게서 관심을 거두어 달라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원래부터 식물과 인간은 무언가를 바라고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다. 같은 땅 위에 머물면서 각자 살아가는 것뿐이다. 다만 정말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말하라면 딱 한 가지. 주인이 나를 잊어버리고 물을 그만 주는 일 뿐이다. 

 

주인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을 짓다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뿌리는 축축하고, 날은 갈수록 더 추워지는데 주인까지 점점 이상해지니 마음이 영 심란하다. 하지만 주인이 저러는 이유를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 주인은 손이 아니라 어딘가 저 안쪽이 아픈 것이다. 지금 주인이 뱉고 있는 건 말이 아니라, 가시다. 이런 건 식물 중에서 선인장이 제일 잘 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모두 가시로 덮여 있는 몸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시와 함께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선인장은 누가 가시를 돋우고 있는지, 가시를 세운 것들의 내면에 얼마나 약한 부분이 숨어 있는지를 잘 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그런 건 가시 끝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요즘 주인의 시선과 숨소리 사이에는 상처 입은 마음이 조용히 진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못하는 선인장한테 이러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나는 주인의 손에 상처를 낸 선인장일 수는 있어도, 주인의 마음을 상처 낸 인간은 아니다. 

 

 

*

“봉옥, 너무 섭섭해 하지는 마. 원래 너 오기 전에는 얘네들 자리였어.”     

 

주인은 향기가 없는 나를 대신해 갖가지 향수며, 디퓨저라 불리는 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는 내 화분에 물을 주고 난 후, 자신이 뿌리던 향수를 내 머리 위로 칙, 하고 뿌리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 숨구멍이 턱하고 막혀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건 선인장이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정말이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더 억울한 것은 그 고통을 이유조차 모르고 당했다는 것이다. 선인장에게 이런 고약한 짓을 하다니, 내 몸에 난 비늘 한 털만큼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인간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차오르는 물기 때문에 안 그래도 숨이 막힐 지경인데, 그 독한 것을 마구 뿌려대다니. 이로써 확실해졌다. 주인은 정말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 틀림없다. 

 

대체 억지로 만들어낸 가짜 단내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매일같이 온몸에 뿌려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생긴 것만 어여쁜 유리병 안에 든 것이 꽃냄새로 위장한 독물이라는 것을 주인은 정말 모르는 건가. 요즘에 주인이 반복하는 이 기이한 짓은 다 나를 선물한 그 남자가 부재중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향기가 나는 것이라면 질색을 하며 싫어했기 때문에, 향수란 이곳에 절대 있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아마 남자가 나를 선물한 이유도 내게 향기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꽃집에서도 남자는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꽃이나 허브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꽃집에 있는 동안 수많은 인간들이 내 앞을 지나갔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선인장들을 찾은 인간은 그 남자가 처음이었다. 보통은 꽃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허브나 화초 그리고 그 다음이 선인장인데, 그 남자는 달랐다. 처음에는 말린꽃들은 어떤 것이 있냐고 묻더니, 이내 남자는 선인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여러 개의 선인장들 중에서도 봉이 오각으로 갈라져 별모양의 모습을 가진 이 몸, 바로 난봉옥 선인장을 골랐다. 다른 건 몰라도 식물 보는 눈 하나는 있는 인간이었다. 

 

지금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그때는 선택받았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남자가 말린꽃들부터 찾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요즘 내 마음상태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죽은 꽃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내가 만약 이미 죽은 몸이었다면, 주인이 지금 나를 또 죽이려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오전에 주인의 손을 빌어 나를 죽이려 했던 녀석은 지금 보란 듯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빨간색 꽃 하나가 그려진 얇고 투명한 유리병이다. 며칠 째 주인은 집 밖에 나가기 전이면 항상 이 녀석을 자신의 몸에 뿌린다. 독한 녀석. 녀석은 냄새만 독한 것이 아니라 그 심보도 지독하기가 그지없다. 며칠 전 이 책상 위에서 제일 좋은 명당이었던 자리를 내게서 빼앗더니,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버티고 서서 비킬 생각을 안 한다. 어쩌면 녀석은 주인의 사주를 받아 나를 죽이려하는 공범인지도 모른다. 주인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물기에 지쳐있는 틈을 타, 내 몸에 저 독한 녀석을 몽땅 부어버릴 작정인 것이다. 아, 상상만 해도 끔찍한 죽음이다.

 

고약한 녀석. 나름대로 진짜 흉내를 내 보겠다고, 녀석의 병 모양은 마치 꽃의 무게에 살포시 구부러진 줄기처럼 살짝 휘어있다. 하지만 어림없다. 아무리 그래도 가짜는 가짜. 내 우아한 오각의 곡선과 은은한 흙내음을 절대로 따라올 수 없다. 진짜가 되려고 하면 할수록 녀석은 더더욱 가짜가 될 뿐이다. 나중에 내 머리 끝에서 노란 꽃이 나올 때가 되면, 그땐 이 녀석의 몸통에 그려진 빨간 꽃보다 더 고운 빛깔의 꽃이 필 것이다. 이런 가짜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보드랍고 촉촉한 진짜 노란 꽃 말이다. 

마치 숨기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듯, 투명한 자태로 서서 도도한 체 하지만 저건 다 녀석의 위장이다. 인간 세상에 있는 것치고 무섭지 않은 것이 없다더니, 이 녀석이 딱 그렇다.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주인을 홀려버리더니 기어이 예전 내 자리를 떡하니 차지해버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 녀석이 어떤 소리를 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주인이 이 녀석을 뿌릴 때 나던 칙칙, 하는 소리가 무슨 마술주문이었던 걸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녀석의 냄새에 인간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바보 같은 나의 주인은 이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 어디선가 자꾸만 이 녀석과 비슷한 새로운 녀석들을 데려온다. 모두들 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들이다. 이렇게 책상 위에 모인 녀석들이 벌써 6병이나 된다. 제각기 얇거나, 뭉툭하거나, 길고, 뚱뚱하다. 덕분에 내 처지는 더 고달파졌다. 이런 가짜들이 하나 둘씩 모이면서 내 자리는 점점 책상 뒤로 밀려나는 중이다. 녀석들은 내 자리를 뺏은 것으로도 모자라 그림자까지 내 몸 위로 드리우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저들끼리 햇빛을 독차지하고 있다. 내 뒤에 나있는 각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냉정하다. 원래 비추던 자리만 계속해서 비춘다. 햇빛이 잘 드는 자리는 내가 예전에 서있던 자리, 바로 나를 죽이려 했던 요물이 자리 잡고 있는 저 자리다. 햇빛을 원망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햇빛을 담뿍 받은 유리병들은 책상 앞줄에 나란히 서서 나를 약 올리듯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면 내게는 녀석들이 뱉어낸 햇빛이 조금씩 들어온다. 요즘 만나는 햇빛들은 시와 때에 따라 제각기 그 모양이 다르다. 일직선으로 들어온 햇빛은 알록달록한 유리병의 무늬를 따라 색이 덧입혀진 뒤 파편으로 부서진다. 병들이 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내 몸에는 긴 그늘이 진다. 이럴 때면 또 고향 생각이 난다. 온몸 위로 숨 막히게 내리쬐던 고향의 햇빛이 머리끝부터 저 아래 젖어있는 뿌리 끝까지 사무치게 그립다. 지금 내 자리에 있는 그건 가짜인데, 진짜는 나인데. 멍청한 주인과 무심한 햇빛은 내 마음을 듣지 못한다. 볕의 온기가 그리워서 온 몸을 비틀어 보지만 이 몸은 선인장. 정해진 이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주인이 나를 볕이 좋은 자리로 옮겨주기를 기다리거나, 해가 다시 높게 떠서 내게도 햇빛이 다다르게 될 봄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

자리는 뒤로 밀렸어도 주인은 여전히 나를 잊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 절대로 빼먹지 않고 내게 물을 준다. 전혀 고마운 일이 아니다. 주인의 그 의지 덕분에 나는 드디어 시름시름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몸통은 아직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뿌리의 상태가 영 심각하다. 끝나지 않는 호우처럼 내리는 물줄기에 이제는 잔뿌리들마저 많이 지쳤다.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늘도, 몸을 말릴 수 있는 햇빛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물을 피하지 못한 탓이다. 아니 순전히 멍청하고 난폭한 주인 탓이다.

 

나, 선인장의 뿌리를 잘 보면 다른 식물들보다 많거나 얇거나 길다. 건조한 땅에서 조금이나마 더 물기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가능한 깊이 그리고 멀리 뻗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올라와 보면 얇고 투명한 왁스가 몸통을 덮고 있는데, 인간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애써서 빨아들인 수분을 몸 안에 품고 있기 위한 자연 코팅막이다.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랜 예전에는 존재했던 이파리들은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비늘이 된지 오래다. 선인장은 이렇게 살아남았고, 이렇게 살아간다. 햇빛이 모든 것을 말려버리는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온몸을 꿈틀거린다. 

아주 건조한 땅에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선인장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받아들인 삶의 기본원칙은 한 번 들어온 물기는 절대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다. 내 몸에는 오로지 물기를 가두기 위한 수많은 장치들이 숨어있다. 그래서 주인이 매일 부어대는 물 역시 어디로도 날아가지 않고 내 안으로 스며든다. 그대로 안쪽에 꽁꽁 숨어 나를 곪게 만든다. 

 

비늘이 난 공기구멍 사이사이로 희미하게 죽음의 냄새가 나려하고 있다. 뿌리에서부터 올라와 몸통을 타고 올라오는 물기 어린 썩은 냄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이 방 안 전체에 그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이다. 모든 썩어가는 존재의 냄새는 고약하다. 식물에게서 어떤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면, 그건 뿌리에서 나는 냄새다. 더욱이 꽃이 피지 않은 선인장에서 어떤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면 그건 단 한 가지를 의미한다. 흙의 생명력이 모두 다하여 더 이상은 뿌리를 도와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뿌리가 썩어버렸다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 뿌리와 밑동이 흉하게 상해버린 선인장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주인은 결단을 내려야한다. 아무리 습관이 되었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들어도 나를 잊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생기를 잃어가자, 주인은 내 화분의 흙에 노란색 영양제를 꽂아줬다. 정말 제대로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간이다. 이미 식물의 뿌리가 축축히 젖어 망가진 이상 영양제는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물일뿐인데. 어디에도 영양을 줄 수 없는 노란색 영양제는 그저 노랗게 썩어갈 것이다. 그나마 영양제만 꽂아주고 지나갔으면 되었을 걸, 멍청한 주인은 거기서 가만히 있던 선인장의 비늘을 꿈틀대게 했다. 

 

“대체 뭐가 문제인데? 내가 이렇게 노력하잖아.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해야 해? 봉옥이 너는 피우라는 꽃은 안 피우고. 왜 물을 주면 줄수록…. 가만 보면 너, 지금 그 새끼 따라서 이러는 거지? 말 한 마디 없이, 사람 피 말리는 것도 아니고.”

 

주인은 할 일 없이 내 머리 끝을 만져보더니 꽃이 피지 않는다고 내게 화를 쏟아 냈다. 선인장에게 물을 주면 줄수록 시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게다가 나처럼 온순하고 독립적인 식물에게 인간의 피를 말린다는 둥, 인간을 따라서 행동한다는 둥, 하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절대 마르지 않는 흙에 처박혀 말라가는 날만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지도 모르면서, 내가 시들어 가는 것이 서럽다니 나 역시 서러울 따름이다. 나를 노려보며 잠시 숨을 고르던 주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이내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내 비늘에 찔렸을 때보다 훨씬 더 긴 울음이었다. 주인은 나를 앞에 두고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는 이번에도 크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온 몸을 들썩이며 내는 끅끅거리는 소리가 꽤 오랫동안 작은 방을 울렸다.

 

 “봉옥이 네가 나를 좀 도와 줘야지. 네가 꽃을 피우면 그때는 다 잊으려고 하는데. 나는 진짜 그러고 싶은데 네가 꽃을 안 피우니까…” 

 

평소 같으면 내가 조용히 참아주었겠지만 이번에는 나도 참지 못했다. 물에 젖어 썩어가는 상황에 꽃 타령을 하는 것도 모자라, 또 내 탓을 하는 주인이 얄미워서 그만, 있는 힘껏 비늘을 날카롭게 세워 손가락을 찔러버렸다. 우는 것을 멈추어가다 내게 손가락을 찔린 주인은 찔린 자리를 어루만지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놀라서 서러운 눈치였다. 주인은 믿지 못하겠지만, 주인의 손이 미끄러진 게 아니라 내 비늘이 아주 조금 길어진 것이었다. 그러게 식물이 아플 때 식물을 화나게 하는 일은 하는 게 아니다.

 

사실은 할 수만 있다면 주인의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라고.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다. 식물의 몸에는 시계가 있어 낮과 밤, 하루 24시간을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통해 나와 같은 선인장들은 언제 잎을 펼치고 언제 꽃을 피울지를 결정한다. 그 시기는 떼를 쓰고 보챈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다 정해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인간은 그걸 모르는 것 같다. 나를 선물한 그 남자도 적당한 때를 몰랐다. 남자는 주인의 때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그냥 끝내버린 것이다. 어떠한 냄새도, 신호도 주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주인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때를 모르는 것은 지금 주인도 마찬가지다. 자꾸 보채도 소용없는 일이다. 선인장이 오래 기다려 꽃을 피우듯이, 인간이 인간을 잊는 데에도 정해진 때가 있는 법이다. 난봉옥 선인장도 아는 것을 주인은 모른다.

 

 

겨울의 해는 낮게 뜨기 때문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도 낮게 들어온다. 주인은 그것도 모르고 나를 이 창문 바로 아래,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구석에 올려다 놓았다. 보통 겨울은 건조하기 때문에, 우리 선인장들은 이 시기를 잘 견디기 위해 휴면에 들어간다. 동물식으로 설명하면 아무것도 먹지도, 하지도 않고 겨울잠을 자는 것이다. 묵묵히 시간을 견디면서 수분을 더 빨아들이지도 않고, 그저 있는 수분으로 버티며 말라간다. 꽃집 벽에 걸려있던 말린꽃처럼. 뿌리가 잘려 이미 한참 전에 죽어버린 꽃들. 인간들은 그것마저 꽃이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내가 있던 꽃집에서는 그 중에서도 스타플라워와 안개꽃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식물의 입장에서 그건 꽃이 아니라 꽃의 시체다. 그래. 이미 죽은 시체한테는 물을 주려고 하지 않을 텐데, 아무리 주인이라도 그런 짓은 하지 않을 텐데. 신경 쓰지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고, 그저 그대로 내버려 둘 텐데. 

 

여기서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축축하게 썩어갈 바에는 어서 빨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자고 싶다. 영원히 깨지 않아도 좋으니 아주 긴 잠을 자고 싶다.

 

내가 막 잠에 들려던 때, 탁, 하는 소리가 났고, 내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뿌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뿌리를 드러내고 엎어져 있는 나를 보던 주인은 얼마간 몸이 굳은 채 서있었다. 책상과 함께 쓰러진 푸른색 향수병 너머로 보이는 주인의 얼굴이 향수 물결을 따라 파란색으로 흔들렸다. 유리병 안에서 물결치는 향수가 살짝 벌어진 주인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깜짝 놀라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주인의 눈썹은 꼭 꽃집에 있던 라그라스 같았다. 라그라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라그라스는 사실 염색된 강아지풀이다. 아마 인간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전에 꽃집 주인과 손님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라그라스는 말린꽃으로만 꽃집에 들어온다고 했다. 강아지풀일 때는 인기가 없으니 빨강, 노랑, 분홍으로 염색하고 나서야 꽃으로 팔린다는 것이다. 들판에서 하늘하늘 흔들리던 연녹색 강아지풀은 지독한 물감을 뒤집어쓰고 꽃이 되었다. 죽어서야 사랑받는 라그라스. 가엾은 라그라스.

 

내가 라그라스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눈썹 사이를 잔뜩 찌푸리고 있던 주인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내 몸과 주변에 있던 흙을 화분 안에 끌어 담고, 가까운 꽃집으로 달려갔다. 주인이 다급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뿌리가 드러난 내 몸과 흙이 함께 덜컹덜컹 흔들렸다. 내 몸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안고 달리는 주인의 숨소리도 같이 헉헉댔다. 

 

 

꽃집 문을 열자마자 주인이 정신없이 외쳤다.

 

“저, 선인장이… 쓰러졌어요. 그러니까… 얘가 혼자 쓰러진 건 아니고, 제가 책상을 쳐서 쓰러졌는데… 근데 얘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아줌마, 얘 뿌리가 왜 이래요? 원래는 안 이렇지 않아요?”

 

급하게 꽃집 문을 열고 들어와 거의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는 주인을 보고 놀란 꽃집의 여자 인간은 주인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는 일단 주인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동안 주인은 쉬지 않고 가파른 숨을 내쉬었다. 주인의 가쁜 숨소리가 계속해서 조용한 꽃집에 퍼졌다. 

 

꽃집 여자 인간은 화분에서 나를 꺼내어 책상 위로 눕혔다. 그리고 내 뿌리와 밑동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머, 얘 좀 봐, 다 썩었네.”

 

“그러니까요. 얘가 왜 이래요? 제가 매일 물도 꼬박꼬박 잘 주고, 영양제도 챙겨줬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됐지.”

 

“네?”

 

“선인장이 이렇게 되기도 쉽지 않은데, 일단 있어 봐요.” 

 

꽃집 여자인간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장갑을 끼고, 칼을 들었다. 이때부터 내 정신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어가는 동안 드문드문 꽃집 여자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아가씨야. 퍼부어 주기만 한다고 다 잘 자라는 줄 알아? 모든지 적당한 게 중요한 거지. 난봉옥 선인장은 한 달에 한 번. 겨울에는 거의 안 줘도 되고. 처음에 설명 못 들었어?”

 

“아…”

 

“이거 봐봐. 다 썩었잖아. 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네.” 

 

꽃집 여자인간은 뿌리에 있는 흙을 털어낸 뒤, 나를 요리저리 둘러보고는 아래쪽에서부터 나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부분부터 이미 빨갛게 썩은 부분까지, 꽃집 여자인간의 칼은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움직였다. 내 몸은 아팠고, 썩은 부분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퍼져있었다. 중간에 정신을 잃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몸이 잘리는 느낌은 이상했다. 그러니까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깨끗한 하얀 몸체가 나올 때까지 내 몸을 잘라낸 뒤에 꽃집 여자 인간이 말했다.

 

“식물이라고 물 많이 주면 고마워 할 것 같지? 근데 안 그래. 원하지도 않는데 자꾸 그러면 그건 괴롭히는 거야. 인간이랑 똑같지. 일단 내가 급한 대로 처치는 했으니까, 집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한동안 이대로 그냥 말려요.”

 

꽃집에서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얼얼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에 이 무렵 나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잃었다. 주인과 함께 살게 된 이후, 그때만큼 편안하고 달콤했던 적은 없었다. 드디어 끝나는구나, 드디어 잠을 잘 수 있구나. 선인장도 인간처럼 꿈을 꿀 수 있다면, 내 고향 멕시코 중앙 고원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꿈속에서나마 장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볼 수 있었으면, 몸속까지 쩍쩍 갈라질 때까지 그걸 받아볼 수 있었으면, 하고는 잠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꽃집 인간 여자의 목소리였다. 달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주인이 나를 들고 문을 나섰을 때, 꽃집 인간은 이렇게 말했다. 며칠 지켜보고도 소용이 없으면, 그때는 정말 끝난 거라고. 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

다시 눈을 떠보니 정신이 몽롱했다. 머리 위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말했다. 

 

“정말 너를 버려야 하는 걸까? 다시 살아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다시 살아나서 약간 기쁘면서도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피로감에 마음이 복잡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는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헛갈리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목소리가 계속 말했다.  

 

 “봉옥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아파서 그랬어. 네가 그렇게 힘든지 몰랐어.”

 

 목소리가 나를 봉옥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나는 내가 난봉옥 선인장이며 앞에 앉은 저 인간이 내 주인 정인간이라는 것을, 이곳은 주인의 작고 네모난 방이고 다시 이 책상 위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은 몸이 반쯤 잘려 하얀 무명천 위에 누워있는 나를 앞에 두고 뚝뚝 눈물을 흘렸다. 이번에는 엉엉하는 소리도, 끅끅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인은 그저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미안해… 봉옥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 그만 할게.”

 

 목소리가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더위도, 목마름도 잘 참는 식물이라지만 선인장도 화가 난다. 그리고 본래 말이 없고 온순한 존재가 화가 나면 더 무서운 법이다. 주인은 미안하다지만 죽다 살아난 선인장의 입장에서 이 인간의 말은 너무 늦은 변명일 뿐이다. 이 난봉옥 선인장을 또다시 괴롭힐 거라면. 예전처럼 물고문을 하며 내 몸을 썩힐 생각이라면 다시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인간. 이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인간은 이 선인장의 마음을 절대로 모른다. 그건 세상 그 어떠한 설명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정말 내게 미안하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너도 나처럼 아파봐라, 인간. 심하게 아파서 내 고통이 어떤지 느껴봐라. 

 

된통 아파라 인간. 그래서 너도 어디 한번 당해봐라.

 

 

*

내가 돌아온 날 밤부터 기침을 하던 주인은 정말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전에 꽃집의 여자주인한테서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코와 뺨이 빨개진 채 온몸을 떨며 추워하던 꽃집의 여자주인은 손님들에게 자신이 몸살이라는 것에 걸렸다고 말했다.  

지금 주인의 두 뺨은 그때 꽃집의 여자주인의 것처럼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고, 주인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있다. 이렇게 주인이 침대에만 누워 지낸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되어간다. 아마도 몸이 많이 뜨거운 모양이다. 주인이 내뱉는 숨에서도 열기가 느껴진다. 주인이 몸 밖으로 열기를 내보내는 동안 내 몸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천천히 몸이 회복되면서 상했던 뿌리도 차차 마르는 중이다. 그동안 빨아들인 물기가 많다 보니 뱉어내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리려나 보다. 그 중 제일 기쁜 것은 다시 숨을 잘 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주변의 습도가 높아지는 밤에 숨구멍을 열어 숨을 쉰다. 이 선인장 몸 안에 있던 깨끗한 산소를 주인의 네모난 방으로 내보낸다.  

***

몸이 말라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제 문제는 햇빛이다. 대체 햇빛을 본 지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주인이 아픈 덕에 물세례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건 좋지만 선인장에게는 햇빛도 중요하다. 이러다 주인이 영영 깨어나지 않으면 이대로 꼼짝 없이 말라 죽게 될 것이다. 필요할 때는 없고, 필요 없을 때에만 있는 정말 성가신 인간이다. 

방금 전에는 볕이 그리워 창문 너머로 들어온 햇빛 한 줄기 쪽으로 몸을 쭉 뺐다. 내가 지금 있는 자리는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그늘진 창문 밑이다. 젖은 몸이 잘 마르라고 나를 이곳에 둔 것은 고마우나, 뿌리가 말라 살만해지니 점점 욕심이 생긴다. 조금이나마 햇빛에 닿아보려 다시 한 번 몸을 틀어 보지만, 죽다 다시 살아나도 이 몸은 선인장. 나 혼자서는 햇빛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다. 주인이 일어나서 옮겨줄 그날까지 그저 이 자리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이제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주인이 꽤 많이 아픈 것 같다. 잘 일어나지도, 먹지도 않고 잠만 잔다. 나는 그냥 한 번 아파보라는 것이었는데. 그러게 아픈 선인장을 왜 건드려서는. 그때 내가 너무 심하게 퍼부었는지 주인은 혹독하게 병을 치르고 있다. 간밤에는 잠을 자다가도 뒤척이며 무어라고 헛소리까지 했다. 

 

아픈 주인을 며칠 바라보며 한 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은 너무 아프면 몸에서 물을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이 되었든 몸이 되었든 간에 인간은 그 아픔을 견뎌내지 못하고 운다. 아니, 뜨거운 아픔을 식히기 위해서 운다. 주인의 경우, 이마에는 조그마한 땀방울들이 맺히고, 눈에서는 눈물줄기가 흘렀다. 밤새 달뜬 숨을 내뱉으며 침대 위에서 뒤척이던 주인은 어느 새벽, 불빛이 나오는 손바닥만한 기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쳐다보다가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그 기계가 불빛을 내며 울리지 않기를 바라다가도, 울리지 않아서 섭섭하고 서러운 마음을 감내하며 새벽을 지새웠다. 그러다 주인의 눈이 벌겋게 되더니 똑똑, 한 방울씩 눈물을 떨어뜨렸다. 

 

주인은 그렇게 울면서 평소답지 않게 한 번씩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인간이 그렇게 큰 노력을 들여 숨을 쉬는 것은 처음 보았지만, 나는 주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것도 같았다. 주인은 후련해지고 싶은 듯 했다. 자신 안에 쌓인 형태 없는 상처들을 모조리 내보내고 싶은 것 같았다. 너무 울어서 얼굴 전체가 발개진 주인은 나중에 콧물까지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열이 나는데다가 울어서 코까지 막히니 숨을 쉬기가 힘든지 주인은 연신 코를 닦아냈다. 나는 그런 주인이 불쌍한 마음에 평소보다 더 열심히 숨구멍을 열고 닫았다. 이 선인장이 만들어내는 깨끗한 산소 덕에 주인은 이내 잠이 들었다. 

 

주인 역시 자신이 이렇게 아프게 될 줄을 몰랐을 것이다. 나의 뿌리가 희미하게 썩은 냄새를 내며 신호를 보냈던 것과는 달리, 주인의 마음은 신호도 주지 않고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렇게 주인의 뿌리는 망가졌다. 선인장의 썩은 몸을 도려내듯이 주인의 아픈 자리를 도려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선인장의 썩은 상처는 다른 인간이 도려내 줄 수 있어도, 인간의 것은 인간 자신만이 도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인 스스로가 자신의 상처를 도려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주인의 상태를 보면 영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 정말 다시 화분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햇빛도 보지 못한 채 말라 죽으면 어쩌지. 그건 정말 곤란하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라, 주인. 회복해라, 주인. 선인장도 해낸 일을 인간이 못 해낼 리 없다. 

 

 

*

그렇게 며칠을 기다린 후, 주인이 드디어 눈을 떴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던 주인은 일어나서 물을 한 잔 마시더니, 창문을 열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예전처럼 내게 왔다. 

 

“봉옥아.”

 

나는 말라가는 몸통과 뿌리를 잔뜩 움츠러뜨리고는 햇빛에게 빌었다. 또 다시 젖지 않기를, 저 인간이 다시 물을 뿌리지 않기를. 잔뜩 긴장한 내 몸을 잠시 바라보던 주인은 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새 화분과 흙을 가져와 나를 새로 심어주었다. 주인은 봉지에 포장되어 있던 흙을 손으로 만져보고는 분무기로 조금 적셨다. 

 

이로써 나, 난봉옥 선인장은 새로운 화분에 새로운 몸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제 내 자리는 책상 그늘이 아니라, 이 방에서 햇볕이 제일 먼저 들어오는 창틀이다. 주인은 분갈이를 해주고는 나를 들어 주방 창틀 위로 옮겨주었다. 그 다음으로 주인이 한 것은 향수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내가 오랜 어두운 시간을 보내야했던 책상으로 가서 향수병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던 주인은 어디선가 상자를 가져와 향수를 그 안에 담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딱 한 개의 향수병만 남기고 뚜껑을 담았다. 책상 위에 남은 향수는 주인이 자주 뿌리던 빨간색 꽃이 그려져 있는 그 향수였다.

 

 

그 뒤로 또 몇 주가 더 지나고, 이제 내 자리는 부엌에 조그맣게 나 있는 창문 위다. 나를 막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바람도 볕도 아주 잘 들어온다. 이제는 햇빛도 다시 나를 알아보는 눈치다. 더 이상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고, 알아서 알아보고 나를 잘 찾아온다. 주인은 이제 다시 내게 신경을 잘 쓰지 않는다. 가끔씩 분무기를 들고 찾아와, 흙이 말라갈 때쯤 한 번씩 화분의 흙을 만져보는 것 그뿐이다. 한 달에 한 번 물도 적당히 준다. 주인도 이제는 정말 다 나은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요즘도 가끔 고향 생각을 한다. 특히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에는 내 고향 멕시코 중앙 고원이 또 그립다. 하지만 나도 안다. 온통 노르스름하고 푸르른 것들도 둘러싸여 있던 것은 어제의 일. 나는 이제 주인의 이 작고 네모난 방에서 살아가야 한다. 적당한 햇빛과 적당한 물을 받으며 이상하지 않은 주인과 사는 것은 그 나름대로 또 괜찮을 것이다. 

 

해가 높이 뜨기 시작했다. 봄이 오려나보다. 밤새 숨구멍으로 들어오는 공기에서 봄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비늘이 난 숨구멍 사이사이로 살포시 봄이 느껴진다.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내 머리 위에서도 노란 꽃이 피어날지도 모르겠다. 이제 뿌리는 완전히 말라 건강해졌다. 다시 흙의 수분을 빨아들이기 위해 멀리 그리고 깊이 꿈틀댈 준비를 마쳤다. 아, 그러고 보니 주인이 내게 물을 주지 않은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조금 목이 마른 느낌, 오랜만이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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