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역사속에는 무수히 많은 독재권력이 있었다.

이들 독재권력은 한결같이 자신에게 저항해 오는 정신과 위해롭다고 판단되는 사상을 통제·억압하면서 핍박, 배제하였다.

중국 진시왕때 분서갱유와 저 유명한 「바스티유의 금서」를 만들어 낸 18세기 프랑스 앙시엥 레짐기의 계몽주의 사상 탄압, 나찌하의 학문·사상 탄압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러한 독재권력의 진보적 사상 탄압은 2백여년이 지난 오늘, 자유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이 나라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유신체제와 5공화국이 그러했고 90년 벽두부터 이진경씨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대거 구속되고 압수도서가 9만여권에 이른 것만을 보아도 지금의 6공화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다만 그 탄압의 양상만이 세련되고 고도화되었다는 것만이 변화되었을 뿐. 일례로 얼마전 순수학술지에 한한 북한서적 반입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어 많은 학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주식회사 남북교역이 신청한 「북한서적 반입과 북한주민접촉」을 통일원측이 승인함으로써 국역 「이조실록」을 비롯해 「선역팔만대장경」「팔만대장경 해제」등 북한에서 만들어진 책이 공식적으로 반입, 배포될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된 것이다.

물론 북한 문헌이나 자료의 공개가 이서 취급되어왔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번 허용이 분단 이후 단절된 민족문화의 맥을 다시 잇고, 민족 동질성 회복에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허나 40여년의 분단으로 인해 심화된 민족의 이질성이 책 몇권 오간다고 극복되는 것은 아니며 더우기 교류되는 책조차 주로 고서인 순수학술지에 국한한다고 할 때는 더이상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물론 「첫술에 배부르겠냐?」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람들에게까지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는 사건이 최근에 일어났다.

정부는 북한서적 반입 공식허용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봄우뢰」 「대지는 푸르다」등의 북한 원전소설을 비롯한 북한서적을 출판했다는 빌미로 출판사 대표를 구속하고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이다.

같은 북한서적을 둘러 싸고 「허용」과 「구속」이라는 상반된 현상을 보여준 우리의 정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는 정권이 아직도 전면적인 학문사상의 자유를 허용하지 못할 독재권력자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 속의 독재권력이 학문·사상 탄압을 고집하다 스스로의 덫에 걸려 쓰러져 갔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2백년이 지난 오늘 되풀이되는 진보적 사상에 대한 야만적 횡포의 종말을 예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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