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번/전공/국적 불문. 이화인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본교 중앙축구동아리 FC콕 홍보지에서 발견한 문구다. FC콕이 지난 4년 동안 본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에 올린 홍보글을 모아 살펴봤다.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는 말은 2017년부터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아리는 이제 더는 한국인 학생들만의 리그가 아닌 게 됐다.

본교 80개 중앙동아리에 현재 활동 중인 외국인 학생(교환학생 포함) 수를 문의했 다. 35개 동아리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이화태권 7명, 배드민턴 동아리 이콕 4명, 이화검도부 3명, 실로암 만돌린·이화바둑·산악부 각 2명순으로 외국인 학생이 많았다. 본교 오케스트라 동아리 실로암 만돌린 회장 신혜원(경영·18)씨는 “(유학생이) 한 기수마다 한 명 정도는 꾸준히 있다”고 전했다.

이화의 유학생들은 어떤 동아리를, 왜 선택했을까. 실로암 만돌린 소속 리위신(李語 欣·사회·18)씨와 이화바둑 소속 왕한쉔(王 涵萱·국제·16)씨를 만났다. 이들은 진정한 한국 대학생활을 맛보려면 꼭 동아리를 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로암만돌린 부원들과 악기 연습 중인 리위신씨
실로암만돌린 부원들과 악기 연습 중인 리위신씨

△동아리는 그들의 ‘대학생활백서’

리위신(李語欣·사회·18)씨는 지난 학기 초, 오케스트라 동아리 실로암만돌린에 가입했다. 41기로 신입 기수다. 리씨는 화장실에 붙어있는 동아리 홍보지를 보고 실로암만돌린을 우연히 알게 됐다. “만돌린이라는 이탈리아 전통악기를 치는 동아리예요. 제가 원래 바로크 시대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런 동아리가 있다는 게 신기했죠. 꼭 가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9월26일 저녁, 리씨를 따라 실로암만돌린 정기모임에 참석했다. 학문관 501호에 들어서자, 둥그렇게 둘러앉은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이 보였다. 만돌린, 만돌라 그리고 클래식기타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 연습 중이라고 리씨가 설명했다. 리씨의 옆구리를 차지한 악기가 눈에 띄었다. 아몬드를 반으로 가른 것처럼 생긴 그 악기가 바로 만돌린이라고 했다. “저도 여기 와서 만돌린 처음 쳐봤어요. 그래서 연습할 때 엄청 힘들었어요.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선 점점 재미를 느꼈어요. 선배님들이 엄청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선생님도 매주 한 번씩 오셔서 가르쳐 주세요”

학기 중엔 매주 목요일마다 한곳에 모여, 맡은 악기를 각자 연습하는 시간을 갖는다. 봄에 있을 연주회를 위해서다. 본격적인 합주는 방학부터 시작된다. 주 3회 정기모임은 물론이고 3박 4일 동안 진행되는 합숙 연습도 있다. 방학 내내 동아리 부원들과 붙어있으니 리씨의 한국어 실력도 자연스레 늘 수밖에 없다. “한국어 수업은 다 이해할 수 있지만, 학술적인 언어잖아요. 일상에서 쓰는 한국말은 잘 못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반말, 존댓말 바꾸는 게 어려워요. 그런데 동아리엔 동기도 있고 선배, 후배도 있으니까 연습할 수 있어요”

리씨에게 동아리는 가장 유용한 정보원이기도 하다. 학교 다니며 필요한 정보의 대부분을 동아리에서 얻는다. 특히, 수강 신청을 할 때 가장 많이 도움을 받는다며“제가 완전 좋아하는 거”라고 리씨가 강조했다. “교과목 권장 학기 보는 법, 학년별 정원 확인하는 법, 철회는 언제 할 수 있고 채플 요일은 어떻게 바꾸는지·· 한국 학생들은 다 알지만 저는 정말 몰랐어요. 중국인 학생들 사이에도 이런 교류가 있는데 엉망인 상태예요. 심지어 뭐가 필수 과목인지 잘 모르는 친구도 있어요. 유학생들이 아는 정보는 전체의 아주 일부일 뿐이에요” 실로암만돌린 회장 신혜원(경영·18)씨는 이를 두고 공연 동아리의 특성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연습하다 보면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누거든요. 연습 시간이 길다보니까... 기숙사, 수강 신청 등 다 학교 이야기죠. 위신 씨는 저희에게 살아온 고향이나 지방에 대한 이야기도 해줘요”

동아리에서 한국인 친구는 많이 사귀었냐고 묻자 리씨는 단 1초의 틈도 주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지난 추석연휴엔 한국인 친구 두 명을 집으로 불러 스테이크를 만들어줬다고 전했다. “스테이크는 절대 실패하지 못하는 요리니까요(웃음) 그 주 일요일에 저를 초대하고 싶다던 언니도 있었는데 교회에 가느라 못 갔지만 정말 감사했어요. 우리 동아리에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연휴에 리씨의 집을 방문했다는 정유진 (화학생명·19)씨는 추석연휴의 일화를 전했 다. “원래는 타향에서 혼자 지낼 위신씨를 위해 명절음식을 가져가 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친오빠가 다 먹어버려서 송편과 쌀과자 정도만 챙겨갈 수 있었어요. 오히려 제가 대접을 받게 됐네요. 스테이크는 굉장히 맛있었어요” 정씨는 “꼭 외국인과 내국인의 관계를 떠나, 동아리를 통해 같은 취미를 가지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며 “위신씨는 사람 대 사람으로도 본받을 점이 많고 재미있는 친구” 라고 전했다.

리씨는 동아리야말로 한국 대학 생활을 제대로 경험할 기회라고 했다. 한국인 친구와의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한국에서 더 살지 않는다고 해도 진정한 교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업만 같이 들으면 그냥 단편적인 친구가 될 뿐이니까요”

 

이화바둑 부원들과 바둑을 두고 있는 왕한쉔씨
이화바둑 부원들과 바둑을 두고 있는 왕한쉔씨

△7학기 동안 동아리 3개나 한 이유? 동아리는 학교생활의 일부일 뿐

왕한쉔(王涵萱·국제·16)씨는 중앙동아리 이화 바둑 소속이다. 7학기 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왕씨는 이화 바둑이 세번째 동아리다. 그 전엔 이화검도부와 실로암 만돌린에서 활동했다. 처음 동아리에 가입했던 이유를 묻자 왕씨는 “공부도 하고, 동아리도하고, 알바도 하고 한국 20대 대학생들 하고 똑같은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역동적인 걸 좋아한다는 왕씨가 이번에 바둑 동아리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제 4학년이라서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몸도 힘들어서 조용히 앉아서 둘 수 있는 바둑을 선택했어요.” 이화 바둑은 매주 수요일 저녁 정기모임을 가진다. 학문관 동아리방에 여덟 명 정도의 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바둑을 둔다. 왕씨의 바둑 실력은 어느 정도냐고 묻자 망설이더니 이내 “중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유치원 때부터 바둑을 배웠어요”라며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다.

이화 바둑 회장 신은채(국문·18)씨는 왕씨는 이화 바둑의 에이스라고 했다. “우리 동아리에선 한쉔씨의 수준은 상이에요. 다른 부원들이 막혔을 땐 훈수 둔다는 말처럼 도와주기도 해요” 신씨는 왕씨가 처음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봐 걱정이 됐다고 했다. “오늘 모임이 없다는 걸. 잘못 이해해서 나올 수도 있고·· 하지만 한쉔씨는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신씨는 왕씨가 유학생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게 해줬다고 덧붙였다. “활동을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대학 졸업장만 얻으려고 이화에 온 건 아니라는 게 보여서 좋았다”며 신씨는 본인도 재외국민 전형으로 입학했다고 밝혔다. “재외국민 학생들은 대학에 쉽게 들어왔다는 편견이 있거든요. 외국인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 상처를 아니까 더 신경써주려는 마음도 있었어요”

왕씨는 2016년 9월 입학했다. 많은 유학생들이 어학당에서 공부한 뒤 대학에 입학하는 것과 달리 왕씨는 어학당에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 왔을 땐 한국어도 서툴고 친구도 없었다. 게다가 학과 특성상 동기들 대부분이 재외국민이어서 한국어로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 대신 왕씨는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한국어 실력을 키웠다. “동아리 하면서 한국인 학생들과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제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데도 다 들 잘 챙겨줬어요. 천천히 얘기해주고, ‘할 만해요?’라고 물어봐줬어요”

동아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냐고 왕씨에게 물었다. 왕씨는 대동제에서 죽도를 닮은 추로스를 판 이야기를 마구 쏟아놓더니 이내 검도부에서 만난 한 친구 얘기를 꺼냈다. “같이 검도부했던 중문과 친구가 지금 상하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는데, 이 친구가 지금 중국 대학 검도부 사진을 보내줬어요.이것 좀 보세요. 그 학교 축제인 것 같아요” 왕씨는 정연재(중문·17)씨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특별한 친구”라고 소개했다.

왕씨와 정씨는 이화검도부에서 만나 3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들은 힘든 시기에 서로 힘이 되어주며 버텼다. 왕씨와 정씨가 속한 이화 검도부 28기는 아주 적은 수의 부원으로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자 다들 동아리를 나가고 딱 둘만 남았다. 동아리의 존속을 위해 한 학기씩 번갈아가며 부장을 맡았다. 정씨는 “검도부를 한쉔과 저의 힘만으로 지탱해야 했어요. 그렇게 약 2년간 동고동락했죠”라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정씨는 “한쉔은 중국에 대한 첫인상이었다”며 “한쉔은 여러 의미로 특별하다”고 했다. 정씨는 “검도부의 많은 일을 저희 둘이 부담해야 했을 때 큰 힘이 돼줬어요. 제가 그 당시에 행동보다 말이 먼저인 사람이었다면 한쉔은 항상 행동으로 보여줬어요” 라고 전했다. 이어 “한쉔은 결석도 지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한국인이 가진 편견 중 중국인은 느리고 게으르다는 생각을 깨 준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현재 왕씨의 고향인 중국 상하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다. 정씨는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왕씨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왕씨가 청소년기를 보낸 곳에서 먹고 지내게 되어서다. “다른 나라 친구를 만나는 건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아요. 이십 년 넘게 다른 국가에서 살아온 사람과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다는 건 엄청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화의 구성원이 다양해지는 만큼, 동아리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인 학생들은 또 다른 세계를 접했고, 유학생들은 마침내 이화 공동체의 구성원이됐다. 꿩 먹고 알 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실로암 만돌린 회장 신씨는 “동아리라도 안하면 유학생 입장에선 한국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고 들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유학생 부원이 가입한다고 하면 언제나 환영이에요. 저희도 (같이 하면) 재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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