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렌시아(Querencia)는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로,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의미한다. 요즘은 업무와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이 재충전하는 시공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수면카페, 1인 호캉스 상품 등 케렌시아와 관련된 비즈니스가 각광을 받는 중이다. 내일의 태양이 뜨기 전에, 다시 출근을 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는 틈이 필요해진 시대다.

직장인뿐 아니라 대학생에게도 케렌시아가 필요하다. ‘그때가 좋은 때야’라는 위로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한국 대학생의 일상은 쉽지 않다. 시험기간에 밤을 새우는 것은 예사이고, 고학년이 되면 취업난과 불안정한 분위기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때문에 학생에서 구직자로 신분이 변하기 전 잠시 나를 돌아보고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어야 다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3학년 진급을 앞둔 작년의 나에게도 케렌시아가 필요했다. ‘사망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은 무거웠다. 최대한 빨리 진로를 정해서, 최대한 좋은 스펙을 만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취업이면 취업, 고시면 고시. 그런데 이대로 3학년이 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아직 몰랐다는 것이다. 네 학기를 마친 나는 지쳤고, 피난처가 필요했다. 그래서 대뜸 1년 휴학을 신청했다. ‘대뜸’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권장되는 것처럼 철저한 휴학계획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학 후 한 달은 쉬기만 했다. 질릴 때까지 자고, 놀고, 먹었다. 순수한 쉼이라는 의미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후에는 어디로 가볼까, 어떤 이들을 만나볼까 고민했다. 이것저것 검색하며 지원도, 도전도 해봤다. 운 좋게도 두 군데에서 사회생활을 경험해볼 기회를 얻었고,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의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아보기도 했다. 매주 수요일은 관심분야의 강의를 들으러 다른 학교에 가고, 화요일과 금요일은 봉사를 다닌다. 종종 구내 도서관에 가서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 읽어보고 싶은 책을 본다. 갑자기 호기심이 들면 특정 분야의 책을 여러 권 가져와 읽어보기도 한다. 다양한 시간대에, 다양한 곳을 찾아가보니 20대 여성이 과반을 차지하던 나의 인간관계는 외국인, 70대 어르신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책에서는 지식을, 삶에서는 지혜를 터득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나의 휴학기를 쓰는 이유는, 잠시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휴학을 고민하던 중,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까 봐 걱정에 시달린 적이 있다. 나의 결론은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만 봐도 좋고, 하루가 얼마나 긴지 사색에 잠기는 시간도 좋다. 많이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2019년은 재학에 의한 휴학이었고, 복학을 위한 휴학이었다. 이 글은 휴학을 장려하는 글이 아니라 잠시 숨을 가다듬자고 권유하는 글이다. 하루 중 찰나라도 좋으니 우리 삶에서 ‘케렌시아’를 찾아보자. 사색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 깊은 심심함을 누릴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이제는 자기계발을 넘어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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