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은 전쟁의 언어다. 권위적, 억압적, 폭력적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19회의 비상계엄과 7회의 경비계엄이 선포했다.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계엄은 반독재를 타도하라 외치는 시민 사회를 향했다. 엄중한 선포로 시민은 총구 앞에 놓였다. 그렇기에 계엄은 역사의 자리에서만 있어야 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말이다.

2017년은 한국 정치사에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는 해였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시민들은 주요 도시의 중심부로 모여 정권 퇴진, 탄핵 운동을 펼쳤다. 폭력은 없었다. 시위는 정치 풍자와 함성이 가득한 공론장이었다. 결국 오랜 시위 끝에 대통령은 탄핵됐고, 정권은 바뀌었다. 연약한 촛불이 광장에 한데 모여 굳건한 권력을 뒤집었다. 

이 무렵 우리는 역사 교과서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단어, 계엄령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이를 듣고 언제 적 이야기냐 말했다. 하지만 작년 8월 한 문건이 공개되며 난리가 났다. 바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2017년 광화문 촛불을 끄기 위한 기무사의 방안이었다. 전국에 계엄령을 내려 폭력 시위로 변질한 촛불시위를 진압하고 탄핵 이후 정국을 군이 통제한다는 내용이 문서의 골자다. 당시 루머로만 여겼던 계엄령 선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개 이후 군과 검찰의 합동 수사가 이뤄졌지만, 불행히도 핵심관계자 중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핵심 피의자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미국으로 잠적, 행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10월21일 군 인권센터가 계엄령 세부계획 문건을 공개했다. 이번 공개된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 문건에는 계엄 준비, 선포, 시행, 해제 등의 목차로 계엄 선포 분위기 조성부터 시행 방법까지 자세히 적혀있다. 계획은 정말 충격적이다. 국회 무력화 계획, 언론 매체 및 인터넷 통지 방안. 이름만 들어도 시대와 역행한다. 과거 터키 군부가 쿠데타 당시 SNS 접속을 차단한 사례로 주요 포털사이트와 SNS를 차단하려는 계획도 있다. 이들의 작당 모의가 실패로 끝나 천만다행이다.

내가 충격에 빠진 대목은 따로 있다. 물리적 장악 계획이다. 광화문 일대와 용산역, 신촌 일대 등에 군부대를 투입, 집회, 시위 지역을 ‘점령’하겠다 명시한다. 특히 우리 학교가 위치한 신촌에는 26사단이 배치된다고 했는데, 이 사단은 장갑차를 주로 하는 기계화 보병사단이다. 

문건 내용 공개로 작년 오리무중된 민·군 수사의 부실 의혹과 검찰 총장과 현 야당 대표 관련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나는 당시 문건 작성을 위해 모인 자들의 의식에 의문이 든다. 이들은 가족, 친구들과 추운 겨울날 촛불 들고 광장에 모인 국민을 뭐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정치외교학과 김수진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귀한 자산은 ‘시민운동’이라 말한다. 이를 빼놓고는 한국 정치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다. 식민지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국민적 저항인 3.1운동의 기억. 부정 선거에 대항한 4.19혁명과 승리의 기억. 이들이 더해져 이후 투쟁에 영향을 미쳤다. 집합적 승리 기억의 누적은 시민을 강력하게 했고 오늘날 국정 농단에 규탄하는 촛불 혁명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시민 세력은 그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반하는 세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들에게 촛불은 폭력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세부 계획이 나올 수 있을까? 이들은 어느 시대에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군사정권이 툭 하면 군을 동원, 계엄 선포로 권력을 지켜왔던 때에 멈춰 있는가. 야욕이라는 방부제로 군부 박물관에 박제된 둣한 그들. 국가를 장악하고자 한 계엄 문건 관련자들에 관해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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