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내 맘대로, 브래지어에서 벗어나는 '탈(脫)브라' 확산
내 몸은 내 맘대로, 브래지어에서 벗어나는 '탈(脫)브라' 확산
  • 배세정 기자
  • 승인 2019.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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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자유에서 여성 해방까지, 이화인이 직접 말하는 탈브라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고등학생 때 위가 불편하면 브래지어를 앞으로 잡아당기곤 했어요. 불편하긴 했지만 사회의 암묵적 규범에 따라 항상 착용했죠. 그러다 옷을 두껍게 입은 어느 날 브래지어를 차지 않고 외부 활동을 해봤는데, 항상 제 위를 조여오던 느낌이 사라지니까 편하더라고요. 탈(脫)브래지어(탈브라)가 편하다는 걸 느끼고 나서는 속옷 착용을 꺼리게 됐어요.”

최지혜(서양화·17)씨는 작년 겨울부터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다. 여름엔 젖꼭지가 두드러져 보일 수 있어 실리콘 니플 패치(젖꼭지에 붙이는 스티커 형태의 패치)를 착용한다. “여름에 니플 패치가 다 떨어져서 탈브라로 밖에 나간 적이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등을 한껏 굽혔어요. 젖꼭지를 보이지 않기 위해 허리가 아플 정도로 등을 굽혀야 하는 이 사회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신유빈(서양화·18)씨 또한 작년 겨울 탈브라를 처음 시도했다. 그는 “탈코르셋을 한 지 반년 만에 용기를 내봤다”며 “연예인 중 설리나 화사가 탈브라한 것을 보고 용기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부터 착용하던 브래지어를 벗고 밖에 나가는 순간 천국을 맛봤어요. 브래지어를 하고 다닐 때는 제 가슴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탈브라하고 나선 신경 쓰지 않아요. 손발이 있고 머리가 있는 것처럼 가슴도 그냥 있는 거잖아요.”

이렇듯 최근 탈브라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 흔히 ‘노브라’로 많이 알려진 탈브라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노(NO)브라는 브래지어를 하는 것이 기본 전제라는 의미를 지니기에 ‘탈브라’라고 부르는 사람들 또한 늘고 있다. 말 그대로, 브래지어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화인들이 탈브라를 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건강이다. 브래지어가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탈브라를 한 후 소화불량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신씨는 탈브라를 하다가 어쩌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날, 버스에서 멀미가 났다고 얘기했다. ㄱ(화학신소재·19)씨는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 질환 가능성을 높인다고 알고 있다”며 “어머니가 유방암 수술을 받은 적 있는데, 내가 탈브라한 후 어머니도 브래지어를 불필요하게 착용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심기남 교수(의학과)는 “위장 증상이 속옷으로 인한 것처럼 오인되는 경우가 많지만 둘 사이에 큰 관련이 있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면서도 “배를 조이는 속옷이나 겉옷의 경우 복압을 올려서 위식도 역류질환을 유발, 악화시킬 수는 있다”고 말했다.

 

가슴은 욕망 위해 있는 것 아닌 신체 일부일 뿐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지낼 수 있게

탈브라가 자연스러운 세상 돼야

이화인들이 탈브라를 시도할 때 주변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탈브라를 시작한 야치(雅琪·커미·16)씨는 “탈브라에 부정적인 친구는 없었다”며 “오히려 같이 해보려는 친구가 많았다”고 전했다. 신씨는 “친구들은 멋있다고 하거나 탈브라를 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며 웃었다.

본교 재학 중인 달빛상점 이현민 대표는 올해 9월부터 ‘나그랑 노브라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처음 창업할 땐 액세서리 상점이었지만 현재는 젠더리스(genderless, 성과 나이의 구분을 파괴하는 패션 경향) 의류를 제작하고 있다. 이 대표는 “내가 만든 귀걸이들이 주체적 코르셋이라는 걸 깨닫고 의류 및 잡화로 바꿨다”며 “여성에게 해방감을 주는 패션을 꿈꾼다”고 말했다.

“노브라 티셔츠는 시선이 두려워 아직 탈브라를 시도하지 못한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옷이에요. 궁극적으로는 완전 탈브라를 지향하죠. 꼭 제가 만든 티일 필요는 당연히 없어요. 탈브라 운동이 단순히 브래지어를 벗는 운동에서 나아가 여성해방에 큰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연예인이 탈브라를 하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이슈가 되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으면 보기 민망하다’는 의견과 ‘브래지어 착용은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지난 7월22일 YTN 라디오에서 “이렇게까지 노브라가 갑론을박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 몸이 이 사회에서 ◆배틀그라운드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공공장소인데 너무 민망하다는 논리는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존재로만 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야치씨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게 인간의 권리”라며 “이화에서 배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자’는 신념에 따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젖꼭지가 드러나는 건 문란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브래지어로 가슴의 형태를 드러나게 하는 건 섹시하다고 평가된다”며 “여성의 신체를 파편화하고 대상화해 평가 내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탈브라를 한 후 가꾸려고 노력하지 않게 돼 편안해졌다는 신씨는 이렇게 말했다. “용기를 내서 탈브라를 해도 자연스러운 세상을 만들어갑시다!”

◆배틀그라운드: 전쟁의 장(場). 몸을 배틀그라운드라고 표현한 것은 개인의 몸을 국가와 사회가 관리하고 간섭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