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학기 말, 이화인들은 종합시간표와 수강신청서를 들고 한차례 홍역을 치른다.

전공과목을 시간표에 채워넣고 일반교양과 계열별 교양과목 시간표를 훑어 본다.

듣고 싶었던 강의는 전공시간과 겹치고 시간이 맞는 것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다른 학과 전공 특히, 국문과·철학과·정외과 전공 중 흥미있고 난해하지 않을 과목을 찾아본다.

겨우 한두 과목 선택하고 나면 시험볼 일에 앞이 캄캄해져 온다.

그나마 이런 홍역은 1학년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다.

1학년생은 전공과 필수교양으로 가득한 시간표에 겨우 한과목이나 선택할 여유를 갖는다.

게다가 필수교양이라고 하는 국어·영어·제2외국어 등은 고등학교 수업을 연상케 한다.

몇개의 문학작품들을 통해 일반적인 문학이론과 언어학 개론을 공부하는 국어시간, 회화능력에도 원서독해에도 거의 응용될 수 없는 영어, 수업을 들어가지 않아도 부담이 없는 고등학교 수업의 반복인 제2외국어…. 학기 중반이 되면 수업을 빠지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신입생들의 심정을 이해할 듯 하다.

대학에서의 교양과목은 전공학문을 심도깊게 공부하기 위한 기초가 되면서 전공에 치중하여 자칫 놓치기 쉬운 일반교양을 학습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현 이화내 교양강의는 이 둘중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모대학은 교양영어만 해도 영문법, 독해, 회화 등 몇 종류로 나뉘고 일반교양 과목수는 이화의 두배가 넘는다는데, 우리는 그 흔한 「정치경제학」조차 개설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꿈꾸었던 대학생은 대형강의실의 속기사도 고등학교 4학년생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화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되어가면서도 우리는 대형강의와 사지선다형 시험 그리고 선택의 폭이 좁고 내용없는 교양강의로 고등학교 4학년생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화가 진정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을 키우는 곳이라면 열악한 학내 교육환경 개선에 더이상 소홀할 수 없다.

오는 92년도에는 교과목개정이 새롭게 시행된다.

『새술은 새푸대』라고 했으니 이번 개정작업에서는 기존 교양교육내용의 방만하고 포괄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에 올바로 수렴하여 이화내 교육내용의 질적 확보를 담보해야 한다.

그리하여 92학번 후배들부터는 종합시간표를 앞에 두고 『들을 과목이 없다』는 개탄의 소리가 유행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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