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각이화]독일 인턴 일기
[이시각이화]독일 인턴 일기
  • 임주현(영교·16)
  • 승인 2019.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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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출근길.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인다. 푸른 눈들 틈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어 있는 동양인 여자 하나. 아직은 어색한 사원증을 괜스레 만지작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나는 현재 유럽 신한은행의 4주차 인턴이며, 이곳은 유럽 금융의 중심지, 독일 프랑크푸르트다.

 

프랑크푸르트는 금융도시답게 독일의 타 지역에 비해 고층 건물들이 많은 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매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며 무역관련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글로벌 인턴십을 진행해 왔다. 이번 22기에는 총 73명의 대학생들이 미국, 유럽, 중국, 베트남, UAE 등 전 세계 곳곳의 국내 기업의 현지 법인과 지사로 파견되었다. 이화여대와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학기를 기점으로 산학협력을 맺었고, 덕분에 나는 좋은 기회를 얻어 하반기 글로벌 인턴십에 참가할 수 있었다. 내가 파견된 유럽 신한은행은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지 영업점이 아닌, 유럽 내의 한국 기업들의 무역 업무를 지원하고, 자금을 관리하는 신한은행의 유럽 법인이다.

 

사실 이곳에 오기까지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사범대 영어교육과 16학번인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정적이라고 생각되는 교사의 길을 잠시 내려두고,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무역, 특히 무역이라는 영역 안에서의 금융에 대해 배우고자 이곳에 왔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을 교사라는 직업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왔기 때문에, 4학년이 되어서 갑자기 진로를 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소 공부해보고 싶었던 분야의 복수전공을 시작하고, 중간고사 기간에는 무역영어를, 기말고사 기간에는 자기소개서를 동시에 준비하였다. 4월에는 교생실습도 하고 무척 바빴지만,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1학기를 버텼다. 고대하던 인턴십에 합격한 뒤, 앞으로 펼쳐질 6개월은 얼마나 꿈만 같을지 늘 기대하며 하루를 보냈다.

 

현실은 내 환상과는 달랐다. 사실 이 인턴십을 지원할 당시에는 희망 파견지를 독일이 아니라 미국으로 기재하여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담당자분으로부터 독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합격 후에 전해 들었고, 때문에 유럽에 간다는 설렘보다는 당혹감과 걱정이 매우 앞섰다. 이미 출국까지 채 두 달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우선 도착해서 내가 들어갈 집이 없었고, 독일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독일의 집주인들은 얼굴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고, 직접 집도 보러오지 못하는 한국 여학생에게 세를 줄 마음이 없었다. 2주를 꼬박 걸려 고생 끝에 집을 구했다. 독일어를 전혀 하지 못한 채로 도착한 독일은 참으로 외로운 곳이었다. 독일 관공서의 직원들은 영어로 말을 거는 나를 보면 표정부터 굳어졌고, 회사를 방문하는 우편부들과의 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출근 첫날, 오랫동안 학원 알바를 하며 곧장 잘 다뤄왔던 복사기 앞에서 독일어로 된 취소버튼을 찾지 못해 잘못 인쇄되고 있는 종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일을 할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하지만, 가끔씩 내 앞을 가로막는 언어의 벽 앞에서는 끝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금요일 출근길에는 크로와상을 사들고 가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러나 1주차, 2주차가 지나 점점 독일이라는 나라에 익숙해지고, 회사 특유의 조직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지금은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외국어를 사용하여 외국인들과 업무를 진행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이 뛰는 일이다. 나에게는 전공으로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영어를 실무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난생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커다란 화면에서 쉴 새 없이 변동되는 환율을 바라볼 때나, 퇴근시간 직전의 한국 기업 직원과 방금 막 출근한 독일의 내가 전화연결에 극적으로 성공 했을 때, 전 세계 기업들 간의 얽혀진 수많은 이해관계를 깨달았을 때 등등, 지금껏 글로만 더듬더듬 상상해봤던 국제사회라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회사가 있는 도심을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 독일의 지하철은 손으로 버튼을 눌러서 열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오후 6시 퇴근길. 셔츠에 언제부터 붙어있었던 건지도 몰랐던 노란색 메모지를 떼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기다린다. 나와 같이 교육을 들었던 다른 인턴 동기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또 지금 그 나라는 몇 시인지 생각도 해보고, 그래도 어제보다 송금 관련 메일 쓰는 건 좀 익숙해졌지- 라며 스스로에게 칭찬도 해본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는 조금 더 배웠고, 반성했고, 성장했으며 아마 한국에 돌아갈 쯤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로 돌아갈 것이다. ‘행복은 위험할 수도 있다. 조금 두렵지 않다면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있다. 외국에서 혼자 살며, 인턴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사실 아직까지는 두렵지만, 이것이 곧 내 행복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