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최원목 교수(법학전문대학원)

내가 해마다 로스쿨 입학 면접에서 수험생들에게 묻는 말이 있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합니다. 이 선서의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가 인간의 몸과 의지를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의사가 되더라도, 절대로 환자의 몸을 가지고 장난치지는 않겠다’는 것을 자기 양심을 걸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법률가는 어떠한 내용의 선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그동안 FTA 협정상의 간접수용•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 개념, 한미 쇠고기 합의서 해석, 일제 강제징용 대법원판결 및 일본의 무역보복조치 등 국제법적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급격히 제고되었다. 택시운전사들까지 청구권협정에서 일본이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배상을 완료했는지 여부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이야기한다. 국제법 분야를 프랙티스하는 사람으로 기분 나쁜 일은 아니나, 날이 갈수록 어둡고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러한 전문적 개념과 관련하여 상당수의 허위•과장•왜곡된 주장이 판치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미FTA가 '감기약값을 10만 원'으로 올리고,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퍼졌다. 지금은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강제징용 배상금 문제는 제외됐는데도 일본 정부가 문제가 포괄적으로 해결됐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근거 없이 무역보복을 가해오는 일본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국제법적 해석이 제기될 때마다 여론은 들끓었고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일부 언론사와 포털의 정치적 상업주의가 법률전문가들의 조약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확대 재생산한다. 지금은 정부조차 나서서 왜곡된 국제법 해석을 주도하고 있다. 사법적폐 청산 대상으로 떠올라 국민의 인기 회복이 급선무였던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노역을 당한 근로자에게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현대적 경향을 반영한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나, 과거 원수지간이던 국가 간에 어렵게 맺은 핵심약속(한일 청구권협정)을 무시하고 협정을 재해석해 버린 결과다. 일본 당국자들이 무역보복을 공언하면서 한일 경제전쟁의 기류가 본격화됐지만, 일본 때리기를 가속하던 청와대는 오히려 판결의 강제집행 과정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줬다. 이어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조치에 대응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중단시켰다. 한일청구권협정의 본질은 국권침탈의 불법성에 대해 양측이 티격태격한 끝에 이 문제를 협정에 명시하지 않고서도 5억불을 한국 측이 수령한 대가로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을 일본에 대해 행사하지 않기로 국가 간 약속한 것이다. ‘보상금 및 기타청구권’이라는 말에서 ‘기타 청구권’은 ‘보상금’ 이외의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기에 ‘배상금’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국가 간 조약으로 소멸시킬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 청구대상은 일본정부가 아니라 모든 금액을 수령한 한국 정부가 돼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협정이 한일합방의 불법성을 명시하지 않고 있기에 배상금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에 일본 기업이 여전히 배상해야 한다는 해석이 내려진 것이다. 대외관계에서는 정부가 국가를 대표하기에 대법원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는 경우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동원해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내법상의 삼권분립원칙을 내세우고 오히려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을 유도하여, 일본의 무역보복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국민적 반일 정서와 친일보수 세력에 대한 반감은 이해할 수 있다. 법률가의 눈을 가진 내가 용서하지 못할 것은 이러한 허위과장의 확대재생산과 갈등의 중심에 정치법률가들(political lawyers)의 왜곡된 리걸 프랙티스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인 어젠더를 가진 법률가들이 두 개의 관련 조항 중에 하나만 떼어 내어 자신이 원하는 해석이 가능하도록 각색해 버린다. “몸을 가지고 장난치며” 환자들의 마음을 지배한다.

자발적인 정보 스크린 운동은 물론, 직업적 법률가들이 진보와 보수입장을 취하기 전에 최소한 법률적 해석과정을 고의로 왜곡하는 행위를 견제하기 위한 ‘법률가 윤리선언’이라도 있어야 한다. 위대한 IT 강국 대한민국이 소피스트 국가로 전락할지 여부는 결국 스스로의 자정 노력에 달린 것 같다. 올해도 로스쿨 입학 면접에서 내가 듣고 싶은 답변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법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겠다”는 말이다.

최원목 교수

 

*최원목 교수의 칼럼은 이번 호에 이어 1590호, 1592호까지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최원목 교수는 국제통상법과 국제법 분야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WTO 협약, FTA, 생물 다양성 등 폭넓은 통상법 주제로 오랜 시간 연구했습니다. 교수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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