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판 페레스트로이카 `신체렐"

페레스트로이카와 제 3세계 사회주의 <4> 몽고 몽고판 페레스트로이카 `신체렐" 이병도 외국어대 대학권 아주지역학과 3학기 몽고에서는 현재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분야에서 「신체렐」(몽고어로 쇄신이라는 의미)이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몽고에서의 이 걔혁사업은 소련의 고르바초프에 의한 페레스트로이카에 상당한 영향은 받아 시작된 것임에 틀림없지만 몽고사회주의의 현실이 대담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측면이 보다 강하다고 볼 수 있다.

1921년 사회주의 혁병이 성공한 이후 몽고는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에 의한 공산당 일당 독재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정통사회주의 노선의 실현은 근로대중들의 노동의욕 저하, 매너리즘화의 진행, 경기침체등 사회내 활력이 감퇴되면서 정치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목축업, 몽고사회주의 경제기반 예컨대 경기침체의 내용중 우선적으로 들수있는것이 목축업의 부진이다.

1960년 「네그데르」(농업협동조합)에 의해 집단화가 확립된이래 이분야는 장기침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사실상 네그데르에 의한 목축업의 집단화는 몽고 사회주의의 주요한 기반을 이루었던 것으로서 혁명이후 40년간에 걸쳐 그 준비기간을 가졌는데 결국 사회적 평등을 촉진시켰다는 긍정적 성과를 빼놓고는 목축생산력의 후퇴만을 초래했을 뿐이다.

물로 축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혁명이후 생산력 제고 전략에 따른 공업부문의 성장으로 상대적인 저하를 보였다.

국민소득 구성비에서도 1970년대 전반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공업생산이 농목업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축목업은 몽고사회주의 경제의 기조를 이루고 있다.

기업체 독립, 관료주의일소 촉진 공업의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경공업, 식품공업은 각각 피혁,모피가공 혹은 식유, 유제품가공등의 축산품을 주원료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축산품및 축산품 원료는 수출의 거의 절반을 점하고 있다.

그런에 도시에서조차 상점에 고기가 없는날이 계속되어 국민들의 불만이 비등해지고 공장에서는 가공용 원료의 확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못해 목축업의 침체는 더이상 방관만 할수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마침내 잠빈 바트믄흐 몽고 공산당서기장은 인구증가에 따른 수요의 신장을 따라가지 못하고있는 농목업의 현실을 볼때 공업국가로의 이행이 반드시 달성해야할 목표는 아니라는 발표를 함으로써 1960년이래 국가목표가 되어왔던 공업화전략에 일대 수정을 가하였다.

목축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다는 공업부문의 경우도 발전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적잖은 문제점이 산적해 있다.

예컨대 소련및 코메콘제국의 원조및 투자로 총생산은 증가했지만 품질은 열악해져 몽고사회주의 경제 발전의 저해요인이 되었다.

공업총생산 성장률을 보자면 1970년대 중반까지 연평균 10%를 전후하는 신장을 보였지만 제 6차 5개년 시기(1976~80)에는 8.4%, 제 7차시기(1981~85)에는 7.9%, 제 8차 상반기 3개년 시기(1986~88)에는 5.5%로 점차 둔화의 경향을 보여왔고, 노동생산성의 경우 역시 1970년대 중반까지 6~7%의 성장을 보이다가 그 이후는 계속해서 하향추세를 보였다.

이러한 몽고 사회주의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몽고사회주의 경제의 기본 양식의 개혁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제기되기 시작한것은 제 19차 몽고인민혁명당(공산당) 대회(1986)부터였다.

이대회에서는 사회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구식수단과 매너리즘이 지적되고 계획과 관리의 고도화, 기업체의 독립성확보, 사회주의 민주화의 촉진, 공개적인 운영방식 등 불가결하면서도 광범위한 경제·사회 개혁을 의도하기 시작했다.

제 19차대회야말로 이제까지의 제반영역의 문제를 총괄하여 「질적향상과 이익의 증진」을 경제계획의 중심에 두고 경제의 계획 및 관리제도의 개혁까지를 포함하는 획기적인 몽고 사회주의경제의 기본 방향을 확인한 중요한 시점이 되었던 것이다.

첫야당 「몽고민주당 출현」 물론 이러한 획기적인 몽고사회주의 향로의 결정은 이 대회보다 3개월 이전에 개최된 제 27차 소련공산당대회에서의 소련 사회주의 개혁의 강화결정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 19차 대회로부터 1년간은 개혁에 대한 논의가 왕성하게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정책면에서는 이렇다 할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제 3차 당중앙위회의(1989)를 계기로 하여 개혁의 구체적 대안이 정책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회의에서 바트믄흐 서기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생산품및 생산규모의 확대와 동등한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익증진을 도모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언습하면서 「질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결점이야말로 몽고 사회주의 경제의 보편적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이때에 경제개혁의 골격을 이루는 중앙관리기구의 통폐합, 개인영업활동법과 가축에 대한 사적소유제의 대폭적인 확대조치등을 중심으로하는 주요 시책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소련·동구개혁 과정에 발맞춰 몽고 공산당이 추진한 「신체렐」은 경제개혁 이회에도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

당내에서의 형식주의, 관료주의 일소를 실현해 나가고 당원의 질향상, 엄격한 집단지도체제의 준수를 확인하였다.

결국 몽고 공산당은 밑으로부터의 개혁 압력에 굴복하여 경제에서의 시장경제체제를 확대 도입하고 정치적으로는 당의 행정불간섭, 복수후보제, 사회민주주의의 도입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에는 몽고 사회주의에 「몽고 민주당」이라는 첫야당이 출현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폐기가 선언됨과 동시에 개혁파 오치트바트가 새 서기장으로 선출되어 몽고 사외주의의 개혁의 속도는 사실상 소련에서의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척 상황과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다.

소련에 이어 오랜사회주의 역사를 갖고 있는 몽고 사회주의 개혁의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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