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속 작은 영화관을 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화 속 작은 영화관을 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 박채원 기자
  • 승인 2019.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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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 오후5시 학생문화관 343호에서 이화 시네마떼끄 부원들 이 영화 상영을 준비하는 장면.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5월29일 오후5시 학생문화관 343호에서 이화 시네마떼끄 부원들 이 영화 상영을 준비하는 장면.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이화그린영상제(EGMF∙Ewha Green Movie Festa)의 숨은 주역은 영상제를 꾸려나가는 학생들이었다. 약 400명의 학생들이 길게는 6개월, 짧게는 3개월 동안 영상제의 기획을 주도해 완성했다.

 

이 중에서도 영상제의 테마, 스크린 섹션별 주제를 고민하고 영상과 영화를 프로그래밍하며 굵은 뼈대를 잡아준 이들이 있다.

 

이화영화제에서 ‘누에꿈틀史’, ‘작은영화의 함성-초청’, ‘작은영화의 함성-공모’섹션을 담당한 ‘영화패 누에’ 그리고 메인테마섹션의 스크린 ‘7 Billiion-aire’, ‘Diaspora’, ‘자본주의의식탁’을 기획한 자치단위 ‘시네마떼끄’다. 영화관련학과가 없음에도 이화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뿌리를 내리고 성장한 중앙동아리 ‘영화패 누에’와 자치단위 ‘시네마떼끄’를 만났다.

 

△열정을 다해, 즐거움으로 ‘영화패 누에’

 

누에에서 제작한 ‘고속도로 180 도 회전’(1991)의 한 장면 제공=영화패 누에
누에에서 제작한 ‘고속도로 180 도 회전’(1991)의 한 장면 제공=영화패 누에

뜨거운 여름, 온 몸에 땀을 적시며 카메라를 들고 뛰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 단지 즐겁기 때문에 열정을 다하는 ‘영화패 누에’(누에)다.

 

다양한 공모전에서 꾸준히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 제작 동아리 누에. 영화 관련 학과도, 영화 편집실도 없는 이화에서 이들은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있을까. 누에 34기 회장 김선민(철학·17)씨와 홍보부 류혜윤(간호·18)씨를 만났다.

 

“영화 관련 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그냥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열정이 있어요. 오히려 영화 관련 전공이나 진로를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툭툭 던지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간호학과, 철학과,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누에를 이루는 이들은 가지각색의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 김씨는 이렇게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건 이화만의 힘이라고 말한다. “과마다 특색이 정말 달라요.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친구들은 환경문제를 판타지로 풀어내고 싶어하고, 조예대 친구들은 미장셴의 감각이나 소품을 제작하는 능력이 남다르죠. 종합대학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비전공자들이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로 창단 35주년을 맞이한 누에는 초기 상영스크린이 비단이었다는 점, 또 누에가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된다는 상징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여성의 변화와 지각을 촉구하고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영화 제작 환경에서 부수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며 활동하고 있다.

 

제2회 이화그린영상제 ‘작은영화의 함성’ 공모 섹션에서 수상한 ‘6974’(2018)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직접적인 화법으로 여성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 종교 안에서의 성평등의 문제들을 담고 있다. “여성문제를 다룬 영화도 많지만 여성을 등장시켜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끄는 이야기들도 많아요” 류씨는 누에의 목표가 비단 직설적으로 여성문제를 외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에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제작은 여름, 겨울 각 2~3편씩 1년 동안 약 5~6편의 제작이 이뤄진다. 촬영은 각 시나리오의 감독별로 팀을 꾸려 진행된다. 완성된 작품은 학기 초 상영하고 GV(Guest Visit) 시간을 가지며 관객들과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방학이 왜 방학이겠어요.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방학이잖아요. 가장 덥고 추울 때에 촬영을 진행하니 고역이 아닐 수가 없죠.” 영화 촬영의 어려움을 묻자 김씨는 영화 촬영을 하는 시기를 꼽으며 무거운 장비들을 나르던 현장을 묘사했다. 분명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이 떠오르는데 김씨와 류씨의 입가에는 미소가 퍼진다. “신기한 것은 다들 크게 불평하지 않아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 즐거운 열정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언제 이렇게 나의 시나리오를 위해서 여러 명이 도와주고 힘내주겠어요. 그러니까 더 자신감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들을 헤쳐 나가는 거죠.”

 

누에가 담당해 기획한 ‘누에꿈틀史’ 섹션은 올해 이화그린영상제에 새로 생긴 섹션이다. 동아리 방을 정리하다가 서랍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80년대 필름이 그 시작이었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16mm, 35mm 필름들과 작업 노트들을 발견했어요. 복원 업체에 맡겼지만 영상이 제대로 나올지, 소리가 들리기는 할지 알 수 없었죠.”

 

복원 과정을 통해 100여편의 필름들을 디지털화했고, 당시의 작업노트와 대조하며 그 의미와 내용을 짚어나갔다.

 

‘누에꿈틀史’ 섹션에서는 80~90년대 영화를 추려 그 중에서도 여성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맥이 굵은 작품들을 상영했다. 복원 상태를 최우선으로 하다보니 내용이 좋지만 안타깝게 스크린에 상영되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다. “작업노트를 보면 영화 속 장면에 정말 많은 의미들을 은유적으로 담아두셨어요. ‘세포분열’(1998)같은 경우에는 프로이트(Freud)의 철학을 영화 속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정말 소름돋았죠”

 

작년 부터 시작해 올해도 열린 작은영화의 함성 섹션은 누에의 첫 영화제다.

 

누에의 첫 영화제 이름처럼 벗들의 작은 목소리들이 큰 함성으로 이어지길 바라요. 누에가 허물을 벗고 날아오르듯이 모든 벗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향해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시네마떼끄, 스크린의 빛만큼 반짝이는

 

4월4일~5일 상영한 중앙동아리 영 화패 누에의 겨울 창작 영화제 포스터 제공=영화패 누에
4월4일~5일 상영한 중앙동아리 영 화패 누에의 겨울 창작 영화제 포스터 제공=영화패 누에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2시와 5시까지 학생문화관 343호의 작은 상영관. 상영관에는 낡았지만 그 역할을 단단히 해내는 상영기가 돌아가고 있다. 상영기 뒤에는 오거나 오지 않을 관객들을 위해 묵묵히 주간의 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스크린에 상영기 빛을 비추고 있는 ‘시네마떼끄’ 부원들이 있다.

 

5월29일 시네마떼끄 이지수 회장(디자인∙17)를 정문 앞 카페에서 만났다.

 

학내 유일 상영 자치단위 시네마떼끄의 이름은 프랑스어 ‘cinematheque’에서 따왔다. ‘필름 보관소’, ‘필름을 상영하는 곳’이라는 어원에서 상영관을 확보하기 힘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영화사료를 보관하는 자료실이라는 의미다.

 

이화인들이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네마떼끄의 가장 큰 목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이미 유명한 영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안하고 있다.

 

시네마떼끄는 매주 새로운 주제 아래 하루에 2편, 일주일 간 8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는 영화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다음 학기에 상영할 주제들은 그 전 방학동안 부원마다 영화를 스터디하고 기획안을 제출해 구성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으로 이씨는 작년 Right Light Festival(라라페)에서 진행한 ‘늙음에 대하여’를 꼽았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활동 방향성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늙음을 회피하려고 하고 두려워하잖아요. 그런 늙음을 피하지 않고 어떻게 대면해야할지 생각해보게 했어요.”

 

올해 ECC Valley에서 진행된 메인테마섹션 스크린은 시네마떼끄를 중심으로 기획됐다.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메인테마섹션 ‘7 Billiion-aire’, ‘Diaspora’, ‘자본주의의식탁’은 각각 경제, 재개발과 난민 등의 사회 이슈, 동물권의 주제로 구성됐다. 자연환경이라는 좁은 의미를 탈피해 넓은 의미의 환경 안에서 최근 더 주목되고 있는 문제들을 주제로 정했다.

 

“‘7 Billiion-aire’ 같은 경우에는 세계 인구가 77억인데, 이들이 모두 억만장자를 꿈꾸면서 세계가 돌아간다고 생각해서 지은 제목이에요. 77억을 뜻하는 7 Billiion에 ‘-aire’을 붙여 이중적인 의미를 만들었죠.” 주제와 제목을 정하고 나서는 시놉시스를 보고 영화가 주제에 부합하는지를 통해 1차 리스트업을 했다. 이후 영화들을 실제로 보면서 주제에 부합하는 정도를 최우선으로 해 가능하면 개봉연도가 최근인 영화, 그리고 국내·외 작품이 잘 어우러지도록 각 스크린별로 세 작품을 선별했다.

 

이씨는 ‘관객’이 시네마떼끄 활동의 가장 큰 동기부여라고 말한다. “평상시에는 2~3명 정도 오세요. 많을 때는 10명, ‘콜미바이유어네임’(2018) 상영 때는 25명도 오셨어요. 시간대가 2~5시이다 보니 수업과 겹쳐 아무도 안 올 때도 있죠. 그런데도 저희가 계속 프로그램을 짜고 상영기를 트는 이유는 수업과 겹쳐도 오시거나 시간 내 와주시는 관객분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관객분들이 지금까지 시네마떼끄가 굴러올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을 앞두고 이씨는 관객을 향한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번 이화그린영상제를 즐겁게 보내셨기를 바라요. 누구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문화공간 이화시네마떼끄로 오세요. 학생문화관 343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