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한 배꽃님이 보내주신 사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배꽃 수다방에 사연을 보내게 된 학생입니다. 요새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이 큰 병에 걸린 걸 본 적도, 병간호해본 적도 이번이 처음이라 어머니께 어떻게 힘이 돼드려야 할지, 어떻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저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할지, 아니면 제가 더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투병과 별개로 일상생활을 지속해나가고 있다는 게 죄스럽기도 하고, 병간호로 졸업이 다시 미뤄져야 해서 취업 준비 걱정에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아프신데 이런 고민을 해도 되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생각이 마구 엉키는 요즘입니다. 저는 딸로서 아픈 어머니께 어떤 모습을 보이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고민이 많은 이화인을 위해 편하게 마음도 나누고 심리 지식도 나누는 배꽃수다방이 찾아왔어요. 학기 말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켠에 쌓아두었던 고민들로 심란하지요? 이럴수록 차 한 잔의 여유를 찾으면 어떨까요? 차를 음미하듯 내 안의 생각들, 감정들, 욕구들 하나하나 돌아보고 음미하면 어떨까요? 때때로 차가 정신을 맑게 하고 차분한 마음가짐을 주듯,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음미하는 시간은 나 자신과 상황을 차분히 바라보고 나아가게 해주기도 하지요.

 

사연을 주신 배꽃님, 배꽃님이 처한 어려움이 얼마나 클지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사연을 읽는 내내 배꽃님을 떠올리며 아린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큰 병에 걸리셔서 배꽃님은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어머니의 투병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진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마구 엉킨다고 하니 저도 참으로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배꽃님들 중에도 자신의 몸에 생겨난 병, 가족의 질병으로 걱정과 슬픔, 혼란을 안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친정어머니께서 큰 병을 앓으셔서 병간호하는 자녀로서의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배꽃님의 고민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저 역시 그 기간 동안 힘들어 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상황을 원망하기도 하고, 자신을 비난하기도 하면서 갖가지 생각으로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을 받았지요. 인간이란 고통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란 걸 절감하면서요.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일이 생기면 누군가를 탓하거나 원망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고통이 싫기 때문에 부정하고 싶은데 부정할 수 없어 이 상황에 화가 납니다. 그러나 정작 화를 낼 대상이 없으니 나에게 화살이 돌아옵니다.

 

원치 않는 상황, 당황하고 낙담하고 슬퍼할 수는 있으나 지나친 불안과 염려로 자신을 옭아매거나 어떤 역할을 강요하면서 자신을 할퀴고 상처 주는 것은 배꽃님 자신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청천벽력같은 상상도 못한 어려운 일, 원치 않는 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일...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는 모두 난감한 정도를 떠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함과 혼란스러움을 경험하지요. 누구나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그런 기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인생의 길에서 질문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키고 힘들 때 어떻게 그 시간을 바라보고 버텨낼 수 있는가?’

 

배꽃님, 분리와 부정은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배꽃님이 처한 상황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모든 상황을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즉, 매 순간순간 간병인으로서 딸로서만 존재할 수는 없어요. 어머니의 병환은 받아들이지만, 어머니의 병환과 자신을 분리해 학생으로서 공부도 해야 하고 한 인간으로서 순간순간 기쁨도 즐거움도 느끼는 것이 건강한 모습입니다. 상황이 나쁘다고 모든 것을 하지 말아야 하거나 하나의 역할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리학에서 ‘과도한 경직성’ 때문에 비합리적인 사고로 분류된답니다.

 

‘융통성과 유연성을 가진 기능적 사고’일 때 이를 건강한 사고, 합리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유연성을 갖는다고 어머니의 병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요. 분리는 정서를 받아들이고 그 정서와 관련된 생각, 신체적 감각도 완전히 경험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유연성을 가지고 상황들을 분리해내는 것입니다. 어머니 병환과 자신을 분리해서 공부에 집중하고 다른 일을 할 때도 일과 사람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뵐 때는 취업이나 진로에 대한 걱정과 분리하여 어머니에게 집중하는 것. 아마 어머니도 배꽃님이 어머니 병환으로 걱정만 하고 병간호만 하는 모습보다는 그런 배꽃님의 모습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고통의 터널을 맞이했다면 그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가장 값지고 평온하게 보내는 방법은 터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배꽃님처럼 병간호로 졸업을 미뤄야 하는 상황이라면 마음이 더 복잡해지겠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평온하고 더 기능적으로 이 상황을 맞이할까? 이 상황을 견뎌낼까?’에 생각의 방향과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때때로 너무 무기력하거나 초조해져서 마음이 복잡해질 때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상념에 빠지고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이때 접한 게 뜨개질이었습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상념에서 벗어나 뜨개질 동작에 집중하니 신기하게도 마음에 평온이 조금씩 깃들고 ‘지금-현재’에 집중하게 되고 마음이 차분해져서 계획한 일을 하게 되더군요. 저의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작업치료의 효과를 느껴 마음치유학교 프로그램으로 ‘위로 인형 만들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게 되었고요.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브렌다 쇼샤나(Brenda Shoshanna)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에는 흘러가는 대로 삶을 관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그는 ‘밀물 때에는 물이 차오르고 썰물 때에는 물이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두라’ ‘완벽한 삶을 위해 무리하게 애쓰고 계획하며 본래보다 더욱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을 멈추라’고 합니다. 가족에게 찾아온 질병, 미뤄질 졸업, 취업, 어느 하나도 쉬운 것은 없지만 뭔가를 내게 강요하기보다는 잠시 멈춰 애써 온 자신에게 말을 건네볼까요? “**아, 너 참, 수고했다고...” 잠깐 멈추어 내 속의 나를 다독여 볼까요? 차 한잔을 음미하듯 내 속의 나를 다독이고 수고한 것들을 음미해볼까요?

 

그러고 나서 잠시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과하지 않고 나의 내면과 일치하며 어머니에게 도움이 되는 일 중 하나를 해보는 자신을 떠올려 볼까요? 말이 버겁다면 가만히 곁에 있는 것, 가만히 서로 바라보고 격려하는 것, 대화를 나눈다면 어머니와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고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 병환으로 어머니가 짜증이나 화를 낸다면 아파서 그런 것이라고 받아주는 것.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잠시 자리를 피하는 것.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해도 따뜻한 눈웃음으로 격려하는 것. 지치고 초조해져서 짜증이 올라오면 병간호는 원래 힘든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 차 한 잔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고 평온을 찾는 것. 나에게 위로가 될 만한 일들.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찾아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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