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현대주의가 우리 문화의공간속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이 새로운 패션은, 새로움을 창조해야 하는 지성의 무거운 책임앞에 완전히 탈진한 나머지, 낡은형이상학의 옷들을 날카로운 해체의 칼로 자르고 몽타쥬하는 꾸밈이나 보여준다.

거리의 사람들로부터 유혹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한 「진보적인」이「야만적」겉치장은부끄러운 보수주의를 숨기면서 자랑한다.

신보수주의의 하나다.

급진성의 분을 짙게바른 탈현대주의의 보수성은, 첫째로,근대성의 주체를 보는 검은 눈에서도 확인할수 있다.

이론은 「주체」(의식)에서 시작할수 없다는 주장을 전개하려는 구조주의 운동은 이제 구조그자체도 제거하려는 탈구조주의를 생산시키고 있는데, 탈현대주의는 이처럼 구조마저 탈구성시키는 행위를 전개한다.

구조주의 운동은 주체에 억눌린 구조를 살리는 운동에서 출발하였으나, 이제 구조마저 스스로 죽이는 또하나의 자살을 선택한다.

탈현대주의는 구조없는 구조주의로서의 탈구조주의를 사용함으로써 주체를 살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탈현대주의가 주장하는 「개성」 은, 산인간들의 자율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을 통제할 수 없는 차이성의 놀이로 보는 회의주의의 결과에 불과하다.

둘째로, 탈현대주의는 역사비판에서도 변화를 밖으로 논술하면서도 속으로는 사회의 정태를 변호하는 보수성을 보인다.

「돌발성」,「순간성」,「급진적불연속성」등이 탈현대주의가「역사철학」울 해체하고 그 빈곳을 채우는 급진성의 언어이다.

연속성의 이론을 비판할때 소박하게 그 정반대의 이론, 즉 불연속성의 시간성 논술로 답하는데 그한계가 있다.

비판적 역사의식은 지속성을 토대로 한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탈현대주의는 붉은「큰얘기」에 깊은 권태를 느끼고서는 해방의 논술이면 무엇에나 진저리를 치는 일종의 노이로제를 앓고 있는것 같다.

세째로, 총체성 일반을 파괴시키고 단편성만을 생산한다.

탈현대주의의 「총체적 단편화」라는 모토는 물론 언어의 통제불가능성이라는 언어비관주의에서 온것이다.

탈현대주의 논술의 아이러니는 재현능력이 없는 언어의 세계를 이 언어 이외에 달리 표현할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네째로, 탈현대주의는 초월의전략을 과시하면서도 사회적 유토피아를 구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구체적생활세계에서 출발하지 않는 붉은 유토피아주의에 저항해야하면서도 행복치 못한 시대를 초월할 해방의 유토피아를 기획한다.

탈현대주의, 이것에서 우리는 불행하게도 한시대의 총체적위기가 위기 비판의 위기에도 그 원인이 있다는 엄숙한 사실을 확인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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