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디지털제작팀 PD

“이번에 뭐 찍지?”

상암동에 위치한 작은 편집실. 오늘도 4명의 팀원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다음 촬영 아이템을 회의 중이다. 벽에는 알록달록한 메모지로 가득한 스케줄 달력이, 책상 위에는 각종 회의 자료들이 자유롭게 퍼져있고, 모니터에는 오늘 밤에 편집할 영상들이 띄워져 있고, 문 입구에는 우리의 스트레스를 달래줄 당도 높은 식량이 쌓여있다.

“음... 일단 우리 시원한 거 한잔하면서 바람 좀 쐬고 오자.”

생각의 회로가 막힌 출구 없는 회의를 깬 한 마디. 나는 이곳에서 생활한 지 올해로 3년 차며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도 지금의 생활과 비슷했다. 수업에서 영상을 만들고, 동아리에서도 영상 제작을 했어서 포관의 편집실에서 보낸 시간이 내 방에서 보낸 시간보다 많았다. 친구들과 이사 참김을 사서 육개장 라면이랑 먹으면서 오늘은 뭐 찍을지 이야기하고, 과자를 먹으며 밤새 편집을 하다 모기한테 온몸이 물리고,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떠 버린 아침 해를 보면서 좌절하고. 그때는 힘들었을 텐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학교생활이 나는 참 즐거웠다. 무엇 때문에 그때의 기억들이 ‘즐거움’으로 표현되었을까?

“그래서 이번에 우리 뭐 찍지?”

한 손에 음료를 들고 회사로 돌아와 다시 회의를 시작한다.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주 5일을, 때로는 주말까지 함께한다. 같이 사는 가족보다도 더 많이 보는 사이다. 설렁탕이나 카레를 먹으면서 오늘은 뭐 찍을지 이야기하고, 편집하다 받은 스트레스에 잠시 술 한잔하러 나가고, 피땀 눈물로 만든 콘텐츠를 시사할 때 피도 눈물도 없는 날카로운 피드백이 오가고. 지금의 이런 생활도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돌아봤을 때 나는 ‘즐거움’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답변은 끄덕끄덕이다.

학생 때나 지금이나 밤낮없이 바쁘지만 즐거움을 느끼는 건 함께한 ‘사람’들 덕분이다. 때로는 사람 때문에 상처도 받고 일을 그만두고 싶었고, 때로는 사람 덕분에 웃으며 신나게 일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과 부대낌 사이에서 콘텐츠들이 만들어졌다. 사람으로 파여진 부분을 사람으로 메꾸어지는 그런 일상들이 모여 ‘콘텐츠’가 된다. 

“그래서 우리 진짜 이번에 뭐 찍지...”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오늘도 회의에서 답을 찾지 못하였다. ‘웃으며 일할 그 날이 올까요?’. 편집실 화이트보드에 붙어 있는 A4용지에 쓰여 있는 문구다. 삭막하고 정신 없는 일상 속에서 웃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사람’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느끼며 만들어가기에 콘텐트는 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해져 가는건 아닌지 생각이 든다. 비록 다음 촬영 때 무엇을 할지 아이디어는 아직 안 나왔지만 오늘도 나는 이 ‘사람’들과 콘텐트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훗날 돌아봤을 때 이 순간들이 ‘즐거움’으로 표현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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