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많은 이화인들을 위해 편하게 마음도 나누고 심리적 지식도 나누는 배꽃수다방이 찾아왔어요. 계절의 여왕 5월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지만, 마음 한켠에 쌓아두었던 고민들로 분주하기만 하고 이 좋은 날을 즐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마음을 내려놓고 내 안의 생각들, 감정들, 욕구들 하나하나 정리하고 돌아보면 어떨까요? 무거운 옷들을 집어넣고 가볍고 예쁜 여름옷들을 꺼내어 정리하듯이 마음의 옷장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생각들, 상처들, 감정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한 배꽃님이 보내주신 사연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난 배꽃 수다방의 고민 글을 보고 용기 내 사연 보내게 됐습니다. 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소심한 성격입니다.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게 너무 힘듭니다. 늘 눈치 보다 첫인사를 목 뒤로 삼키고 맙니다. 어쩌다 누군가와 친분이 생겨도, 그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 역시 너무 어려워요. 대화할 때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답하고, 새로운 소재를 꺼내는 것 같은데 저는 대화에 끼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제가 끼어들면 늘 대화 상황이 어색해지는 것 같아요. 이것 외에, 소심한 성격 탓에 대인관계에서는 늘 상대적인 을이 되는 것이 또 다른 저의 문제입니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참고, 당하고, 기분 나빠할까 겁먹는 건 늘 제 쪽인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제게 못된 소리를 해도 반박하지 못하고 온종일 끙끙 앓습니다. 이런 제 성격과 인간관계가 저를 너무 힘들게 해요.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요?

 

사연 주신 배꽃님, 이 사연을 보내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대화가 어색해지면 당황하고... 내 권리를 주장해야 할 때에도 참고, 못된 소리도 끙끙 속앓이를 하게 되니 사람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들고 어려울까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속상해하실 배꽃님의 마음이 사연을 통해 전해지네요.   

그런데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 긴장과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합니다. 낯선 사람과 만날 때 우리의 뇌는 빠르게 신호를 보냅니다. “어떻게 말을 꺼내지? 혹시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그 다음 말은 무엇으로 하지?” 누구나 사회적 상황에서 다소 긴장하고 불안하게 됩니다. 자율신경계가 발동하기 때문이지요. 다들 조금씩 불안과 스트레스를 견디며 대화를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나만의 문제는 아니란 이야기지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은 타인의 시각을 의식하는 청소년기에 시작되며 사회생활을 하는 20대에 많이 나타납니다. 같은 동네, 환경에서 만나던 중·고교 시절에서 벗어나 대학이라는 사회에서 접하는 사람들은 환경도 처지도 사람 대하는 방식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교수님이나 아르바이트 사장님, 선후배들... 기센 동기나 또래들...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낯선 느낌이 크게 다가올 때, 대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고 상대방의 반응마저 공격적으로 느껴지면 겁까지 납니다.

이러한 이유를 소심한 성격 탓이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사람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낄만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경험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한번 내 안을 더듬어 볼까요? “언제부터 내가 대화에 어려움을 느꼈을까? 그때 내가 경험한 감정, 생각은 어떤 것이었나?” 때때로 우리 감정은 우리를 ‘지금-여기’가 아닌 ‘그때-거기’로 데려갑니다. 말문이 막혔던 그때, 몸이 얼어버렸던 그때, 당황스럽고 창피했던 그때...

지금 현재 대화에서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내 옷장 안의 낡은 옷과 같이 내 안의 낡은 감정 기억이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옷장 안의 옷을 정리하듯 그때 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옷이 아직 입을 만한지, 색깔이나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지 이리저리 내 몸에 대어보고 정리하듯, 그때에는 잘 대처하지 못했지만, 그때는 그럴만 했고 내가 좀 어렸고 당황했고 잘 몰라서 미숙했던 것이라면 그런 그때의 자신을 다독이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막연히 창피하고 싫다는 생각에 머물러 좀 더 깊이 생산적이고 분석적인 차원으로 자신을 다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쉽게 자신을 소심한 성격이라고 유형화하고 얼어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배꽃님의 사연을 읽으면서 배꽃님은 어떤 분일까? 어떤 미소를 짓고 어떤 날씨를 좋아하며 어떤 차를 마실까? 배꽃님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꽃님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매력을 지녔는지 충분히 느끼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부분일 테니까요.

초점을 과거의 힘든 경험이나 상대방의 평가에 둘 때 우리는 그 순간 위축이나 고통스러움, 통제 불가능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예기 불안을 일으킵니다. 오히려 초점을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려고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었던 일들, 조금이라도 성공했던 경험에 맞출 때 우리는 비로소 용기를 내고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분명 배꽃님에게도 그런 성공 경험, 좋은 경험들이 있을 겁니다. 옷장 안에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예쁜 옷이 발견되듯, 배꽃님 내면을 주목하면 좋은 경험과 좋은 대인관계들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번 상상해볼까요? 배꽃님은 화창한 오월 ‘지금-여기’ 화창하고 멋진 캠퍼스에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화하기 쉬운 상대를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땐 어색하지만 가벼운 눈맞춤이 대화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위축되려는 당신은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더 이상 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실패하면 어때? 나는 어색하지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 누구나 힘든 일은 있기 마련이야. 나는 호흡을 하고 대화를 시작해 볼 거야. 시작이 중요하니까...어색한 침묵도 있을 수 있는 거야. 내가 원하는 대화를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해~ 나는 도전하고 있어!” 그리고 시간이 난다면 한번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독일 심리학자 베르벨 바르데츠키가 쓴 책입니다. 번역돼 나와 있네요.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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