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자유 있어도 역사의 실체는 왜곡 말아야

역사 왜곡은 평생 반복될 문제다. 당연한 것이 역사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Carr)는 이렇게 말했다. “산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다른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형체가 객관적으로 아예 없거나 또는 무수하게 많은 것은 아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39년이 지난 지금, 사자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11일 광주 법원에 출석했다. 전씨가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2017) 때문이었다. 그는 책에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서술했다. 이뿐인가, 전씨는 계엄군은 헬기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997년 대법원에서 군사반란,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11일 법원에서 보인 그의 행동은 경솔했다.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 “5·18민주화운동 당시 발포를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전씨는 “왜 이래”라는 외마디 말을 남겼다. 왜 이래라니, 알츠하이머병을 핑계로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골프 치러 간 사람다운 말이다.

이번 사건을 보니 홀로코스트(Holocaust) 부정 사건이 떠올랐다. 홀로코스트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을 말한다. 당시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존재를 두고 미국의 역사학자 데버라 립스탯(Deborah Lipstadt)과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Dabvid Irving)이 법정 공방을 벌였다. 당시 어빙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은 사실무근이라 주장했다. 가스실이 있다고 증언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을 믿지 않은 것이다. 또한 히틀러가 홀로코스트를 명령했다는 공식 문서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히틀러에게 유대인 학살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사 전공 역사학자 리처드 에번스(Richard Evans)까지 자문을 맡았고, 결국 재판부는 객관적이고 정당한 생각을 하는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독일은 홀로코스트 부정을 형사 처분 대상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다.

전두환씨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증거와 증언을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변명도 비겁하다. 그가 국가의 권력을 잡고 있던 한 5·18민주화운동은 전씨와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산의 다른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산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4월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다음 재판이 열린다. 속이 훤히 보이는 변명과 회피는 그만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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