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공학도들에게
여성공학도들에게
  • 임혜숙 전자전기공학 교수
  • 승인 2019.0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통과 공감, 성취의 경험 갖춰나가길

아주 오래전 내가 공과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1000명이 넘는 입학생 중 여학생은 26명으로 2%가 조금 넘었는데, 그 수가 이전 해의 7명에 비하면 늘어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8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낸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대학 공학계열 입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25%로 나타났다. 자연계열 여학생 비율이 51%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대한민국의 여학생의 공대 진학 비율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불균형은 졸업 이후에 더욱 심화된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 지원센터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과학기술 연구개발인력 중 여성 비율은 19%이며,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의 연구과제 책임자 중 여성 비율은 9%에 불과하다. 대학알리미에서 주요 대학별 공학계열 전임교수 중 여성 교수의 비율을 찾아보니, 서울대 2.5%, 연세대 4.2%, 고려대 2.4%, 카이스트 7.4%, 포항공대 5.5%로 나타났다. 본교의 경우 23.8%로 공과대학 중 여성교수의 비율이 가장 높지만, 여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젠더의 다양성이 조직의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연구 결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고돼 왔다. 특히 산업구조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개편돼 가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여성 인력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나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자면, 먼저 공학 자체가 모두에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술의 종류도 다양할 뿐더러 발전의 속도도 빠르기 때문에 배워야 할 내용이 방대하고, 그러한 기술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든다. 내가 어렵게 느끼면 남들도 어렵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다음은 ‘과정의 인내’를 말하고 싶다. 나의 경우도 연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지만 그 과정은 즐거움보다는 고통에 가까웠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는 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길고 힘들수록, 결과물을 마주할 때의 기쁨과 성취감은 더 컸다. ‘노력의 배신’이나 ‘열정의 배신’이라는 말까지 유행하는 요즘으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참아내는 과정이 없으면 그 결과의 성패를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이화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 빨리 리더가 되려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 학력, 경험, 역량에 맞는 일을 맡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 그 일에서 얻게 된 작은 성취와 성공의 경험들을 통하여, 어려움이 닥쳤을 때 좌절하지 않고 헤쳐 나갈 수 있는 인내와 지혜를 배우게 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되어도 잘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흔히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지만, 도달하기 어려워 보이는 먼 곳을 너무 일찍 바라보면 오히려 길의 초입에 들어서기도 전에 좌절하게 될지도 모른다. 설혹 운이 좋아 그곳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능력 밖의 일을 담당하게 되는 경우 더 큰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다음 단계를 바라보고 차근차근 경험과 실력을 쌓아나가야 한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서 인성의 요체는 소통과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나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하여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게 될 것이라는 인공지능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공감하거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에 있어서는 인간을 따라오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은 남성주도적인 공학기술 조직문화의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성취의 경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그리고 소통과 공감능력을 겸비한 이화의 여성공학인들의 활약상이 여기저기서 많이 들려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