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 새로운 삶의 ‘시작’
숏컷, 새로운 삶의 ‘시작’
  • 이유진(국문·17)
  • 승인 20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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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는 중단발 정도 되던 나의 머리를 ‘숏컷’으로 잘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긴 머리의 나보다 숏컷을 한 나의 모습이 더 멋져 보여서’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숏컷을 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당시에 ‘숏컷하니까 잘 생겨 보인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꼭 머리를 다시 숏컷으로 자르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래서 2017년 2월 대학에 합격한 후,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머리를 숏컷으로 잘랐다. 그 후폭풍은 대단했다. ‘여자애 머리가 그게 뭐냐’는 아버지의 핀잔과 내 머리를 본 어머니의 한숨, 그리고 ‘너 또 남자됐냐’는 친구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그 당시 나는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이었고, 코르셋이라는 개념에도 무지했었기에 주변의 그런 반응들에 그저 약간의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아 웃어 넘겼다.

하지만 이화에 들어와 페미니즘을 접하고, 코르셋 개념을 알게 되면서 내가 왜 그런 주변의 반응들에 불쾌감을 느꼈는지, 그들의 말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참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갈 수 있었다. 주변의 참견들에 하나하나 대응하기 시작했고, 일상은 약간 피곤 해졌다. 저녁 식사를 할 때 마다 아버지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고, 동창들을 만날 때면 ‘쟤도 그 꼴페미인가’하는 뒷말을 듣는 일도 종종 생겼다. 속상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로 부터 자유로워졌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계기고 내 인생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났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 생활 방식 전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내게 무엇인가를 강요하거나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고 자유로워지자, 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들의 시선이나 참견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그리고 여성에 대한 사회의 코르셋 강요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나의 변화가 긍정적인 변화라는 확신이 생겼다. 내 삶이 좀 더 편해지기를 바랐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늘 불편하지만 다리가 얇아 보이게 하는 스키니진을 벗고 통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가슴이 처질까봐 잠을 잘 때 마저도 착용했던 브라를 벗었다. 나의 이런 변화에 ‘여자애가 도대체 왜 그러니’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내 모습들에 용기를 얻고 숏컷을 하거나 화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들은 나를 보며 ‘화장을 안 해도 괜찮구나’, ‘머리가 짧아도 되는구나’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나의 변화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된다는 것을 그 때 느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들을 때 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변한 친구들을 볼 때 마다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사실 부끄럽게도 처음 내가 숏컷을 한 이유는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 처음 더 나은 외모를 가지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숏컷과 이화가 만나면서 페미니즘으로, 탈 코르셋으로 이어졌고, 나의 인생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제 더 이상 나 하나만이 아닌 내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여성’에 대해 더 고민하게 하는 계기들을 마련 해 주었다. 그렇기에 나는 ‘숏컷이, 그리고 이화가 나의 인생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여성들이 꼭 숏컷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계기를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 그 여성이 ‘여성혐오’를 하는 여성이라고 해도 나는 그 여성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이 더 행복하고,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고, 설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