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표현하고 존중하는 말하기

며칠 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서로 어색한 자리에 어정쩡한 미소만 지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한 분이 분위기가 불편하셨는지 화제를 던지셨다. 사십여 분이 지나자 어느새 자리는 감정이 상한 이들의 거센 발언들로 불이 붙고 있었다. 불씨는 “지금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한국에서 흔히들 처음 만난 사람과 해서는 안 되는 대화 주제가 몇 가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인종, 종교, 젠더 그리고 정치. 자칫하면 상대방을 알아가기도 전에 언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일까. 다소 민감한 주제들이다.

최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친구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어떻냐는 질문에 친구는 프랑스 사람들과의 대화에 적응하는 중이라고 했다. 당연히 언어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인 줄만 알았다.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던 한국과는 다르게 정치적 관점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프랑스 문화가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민감한 주제에 되려 침착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는 타운홀 미팅 형태의 대국민 토론회가 진행 중이다. 2월12일 프랑스 파리 11구 구청 회의실에는 200명이 넘는 시민이 모였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이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 이후 정치 전략을 소통으로 바꾼 것이다.  1월15일부터 두 달간의 토론회 개최 제안 이후, 2월12일까지 프랑스 전역에서는 2886회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의 주제는 세금, 국가와 공공기관, 생태적 전환, 민주주의와 시민권 등 4가지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시민들이 각 테이블에는 6~8명이 모여 약 1시간의 토론을 이어간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토론회를 통해 수집된 의견은 올해 4월 토론 결과에 따른 정부 계획과 함께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올해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쇼’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만, 대국민 토론회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노란 조끼 시위 이전 수준인 30%대를 회복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토론장의 분위기다. 각자의 주장을 강하게 이야기하지만 분노에 찬 목소리나 증오를 담은 발언들은 들리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비치더라도 서운해하거나 설득하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쓰지 않는 모습이다. 되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의 태도로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대화.

하나의 목소리만 옳다고 결론 지으려 하지 않다보니 민감하게 느껴지던 주제들도 까다롭지만은 않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고 나와 다른 의견이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을 표현하는 것에 부담감이 없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러움에, 며칠 전 모임 자리가 떠올라 아쉬운 표정만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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