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실이 어딨어요?”

대학생활 2년간 학생회 집행부로 일을 하다 단대 대표까지 하게 된 내게 가장 신경 쓰이는 질문이다. 포스코관 어둑한 복도 끝 모여있는 과방과 단대실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겠지만, 이 질문이 내게 더욱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어디 있냐’는 질문이 단순히 단대실의 위치를 묻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단대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각종 복지 사업의 의미에 대한 질문, 학생 자치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처럼 다가오곤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자치의 의미는 1. 저절로 다스려짐 2.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림. 두 가지이다. 그러나 학생 ‘자치’의 경우, ‘저절로‘가 아닌 ‘스스로’의 의미에 가깝다. 학생 자치는 다양한 방법으로 발현될 수 있다. 간단하게는 정문에서 배부되는 선전물을 한번 훑어보는 것부터 직접 학생회 활동을 하는 것까지. 사실상 학생 자치는 우리 학교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모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스스로 관심을 두고 스스로 동참하는 학생들이 모여 강력하고 건강한 학생 자치를 이루어낸다.

그렇기에 학생 자치를 주도하는 학생회에 가장 두려운 것은 비판이 아닌 무관심이지 않을까. 학생 자치는 학교의 일을 자기 일로 생각하는 학생들 없이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 자치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모든 탓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 무관심이 비단 한 개인의 성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도 시킨 적 없지만 과에 대한 애정, 소속 단대에 대한 애정으로 학생회를 꾸려가는 모든 ‘스스로‘ 역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자치가 학생 개인의 삶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학생들의 무관심에는 그 노력이 효과적이지 못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화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무엇이든 ‘저절로’ 된 것은 없었다. 2019년의 이화의 학생 자치 역시 이화의 일을 곧 자기 일이라 여기는 1만5000명의 ‘스스로‘에 의해 이뤄지지 않을까. 누군가 알아서 해주는 자치가 아닌, 누군가 당연히 참여해주는 자치가 아닌, 이화인 모두가 자기 일을 ‘스스로’ 다스리는 이화다운 학생 자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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