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작가
쓰는 사람, 작가
  • 이진송(국문·12년졸)
  • 승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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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잡지 <계간홀로> 편집장

특정 직업에는 유독 압도적인 이미지가 있다. 드라마에는 필명을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온다. 돈도 많고 외모도 뛰어난 그이는 정체를 숨기고 덜렁거리다가 신작으로 출판사나 대중을 쥐락펴락한다. 또 다른 이미지는, 감수성이 풍부하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한 예술가이다. 나는 둘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지만, 일단 작가다. 글을 팔아먹고 살기 때문이다. 작가는 글쓰는 여러 직업을 아우르는 하나의 카테고리이다. 무엇을 쓰는가에 따라 세분화되며, 각 장르마다 특성이나 문법은 천차만별이다. 소설가, 시인, 동화작가, 드라마 작가, 라디오 작가, 시나리오 작가, 에세이 작가, 여행 작가, 스토리 작가, 인터뷰 작가….

어떻게 ‘작가’가 될까? ‘어떤’ 작가를 할까? 다른 직종의 정보에 비해서 모호하고 아직은 신비로워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경로와 작가의 분류는, 그 작가들의 마라탕 취향만큼이나 다르고 무수하다. 나의 경우를 먼저 예로 들겠다. 20대 초반, 나는 빨리 등단하고 싶어했다. 신춘문예나 문학상 당선은 말하자면 ‘정석’ 혹은 ‘왕도’(라고 여겨지는) 루트이다. 그때는 그것만이 작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다. 그러다 독립잡지 <계간홀로>를 창간했다. 연애 강요하는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아무런 직함이 없는 내 글을 아무도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잡지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출간 제의를 받았고, 2016년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출간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나는 에세이와 칼럼을 주로 쓰는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작년부터는 콘텐츠 회사에 다니며 드라마 보조 작가로 일하고 있다. 매력적인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써보고 싶기 때문이다. 영상 글쓰기는 내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달라서 어렵지만, 캐릭터를 만들고 배우들을 가상 캐스팅해보는 업무는 즐겁다. 이런 방송 작가 정보는 관련 과나, 구직 어플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다만 업계 특성상 운이 나쁘면 착취에 노출되기도 하니 주의하자.

소위 ‘문단’이라는 집단에 진입하려면 여전히 등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 심사를 통과했다는 증명이지, 작가로 변신시켜주는 요술봉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등단하지 않더라도 쓰는 사람이 작가다. 뭐든 써둬야 기회가 올 가능성이 높다. 독립출판이 훨씬 쉬워졌고, 경력과 무관하게 출판사에서 직접 접촉하는 경우가 늘었다. 출간 기획서를 써서 출판사에 직접 보내는 방법도 있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응원하는 독자를 미리 확보하기도 한다. 작업을 하다보면 북토크나 강연 같은 행사 스케줄도 생기는데, 자신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기획하고 조율하면 된다.

어떻게, ‘어떤’ 작가가 될까의 문제는 결국 어떤 글을 쓰는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와 만난다. 이 직업은 전공이나 학력과는 거의 무관하다. 작가는 자신의 눈과 언어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직업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어떤 정보와 사건을 만들고 세계와 연결될지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그 고유한 자장만이 고용이 불안정하고 환금 가치가 낮은 작가라는 직업의 매력이자 의의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어떤 작가든, 극소수를 제외하면 전업 작가는 거의 환상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 작가 일만으로 생계 전체를 꾸려나갈 수 없다고 해서 작가가 아니거나, 현실과 타협하고 순수성을 잃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작가는 겸업이 가능한 직업이기도 하다. 나의 많은 작가 친구들에게도 본업이 있다. 자신의 체력과 쓰려는 욕망을 잘 조율해가며, 쓰는 사람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