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공간을 의식하게 될 때가 있다. 점, 선, 면으로 이뤄진 공간이 피부로 느껴질 때 괜히 어색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기둥의 높이감, 서로 다른 방향의 벽들이 부딪혀 만들어 내는 에너지, 붕 떠 있는 천장으로 재단되는 공간을 찬찬히 구경한다.

학보사 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다양한 장소와 만나게 된다. 행사 장소에 도착해 카메라 설정값을 맞추며 주변을 살피다 보면 익숙한 공간도 그렇지 않은 공간도 낯설게 다가오곤 한다. 그 중에서 특히 ‘대강당’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1956년 이화여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며 세워진 대강당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던 중강당과 달리, 당시 이화여대 재학생 4천여 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세종문화회관이 생기기 전까지 ‘동양 최고 규모의 강당’으로 기록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대강당은 ‘이화인’으로서 학교와 공식적인 첫 만남을 가지는 장소, 채플을 통해 매학기 좋든 싫든 주기적으로 만나는 곳, 학교와 공식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공간이 아닐까. 취재를 통해 만나게 된 선배들과 채플에 늦지 않기 위해 대강당 앞의 돌계단을 헐레벌떡 오르던 일화로 공감대를 형성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대강당은 분명 건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개교기념일 즈음 동창의 날 행사에서도 대강당을 찾았다. 당일 행사는 오후3시 무렵까지 진행됐다. 창문을 통과한 5월의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와 노란한복 단정히 차려입은 선배의 얼굴 위에 맺혀있던 장면! 왜 인지 그 날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있고, 또 다른 졸업생 선배가 이화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본인도 그들이 공유하는 기억에 자연스럽게 빠져있는 것 같았다. 조금 과장하면 대강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는 것만 같았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와- 빠져나가고 나서도 한동안 대강당에 앉아있었다.

그 독특한 공간에는 개개인이 느낀 감정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의미를 차곡차곡 덧붙여가는 것 같다. 성별에 구속받지 않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낼 것에 대한 기대감, 대강당이 세워질 무렵 한국전쟁 이후 교육의 장을 재정비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 외에도 60여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신입생과 졸업생들의 내일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지금의 대강당에 녹아있는 것만 같다. 대강당에 흐르는 산뜻한 찬 공기가 폐에 들어갔다 나올 때 알 수 없는 안정감과 든든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까.

학교에 들어와 벌써 세 번의 입학식과 세 번의 학위수여식을 지냈다. 그리고 신문이 발행될 25일 월요일에는 3509명의 졸업생이 세상에 첫 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신입생 시절 학교에 입학하며 꿈꾸던 대학 생활과는 다른 일들, 희망과 기대를 품는 것이 미련한 일로 느껴지는 무기력한 순간들이 오더라도 대강당에 모여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그래도 채플을 들으러 대강당 계단 뛰어 올라가던 일상을 살아낸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듯, 대강당은 바로 그런 기대하는 마음들의 교차로가 되어주는 것은 아닐까. 밤이나 낮이나 그 자리를 지켜주며 많은 신입생과 졸업생, 재학생들을 품어주는 대강당이 언제까지나 그곳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랑하는 대강당이 항상 그곳에 있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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