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 소담 배꽃 수다방

고민이 많은 이화인들을 위해 편하게 마음과 심리적인 지식을 나누는 배꽃수다방이 2학기에 다시 오픈했어요. 여러분들이 주신 사연들을 읽다보니 마음 한 구석이 일렁이네요. 우리 함께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추어 내 마음을 살피는 시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생각대로 되는 일이 생각만큼 많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 체력이 들어가 고민입니다. 막상 예상치 못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내는 것 같은데 이후에 이를 받아들이는데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소모돼 그 시기에 일어나는 다른 일들에는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예상치 못한 일을 막기 위해 더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조금 내려놓고 예상치 못한 일은 항상 일어날 수 있으니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에 더 열을 올리는데 효과적인 것 같지도 않고 항상 조마조마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것 같은 제 모습이 또 다른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일들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요?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사연을 주신 배꽃님, 생각대로 되는 일이 생각만큼 많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 체력이 들어가 고민이 되시네요. 배꽃님의 고민처럼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일들을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요?

배꽃님의 고민은 사실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 모두에게 해당하는 고민이기도 하지요. 좀 더 슬기롭고 현명하게 미래에 대처하고자 노력하는 인류에게 예상과 달리 흘러가는 일들은 크고 작은 좌절과 통제 불능에 대한 불안을 가져다줍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려는 인간에게 따라오는 필연적인 불안이자 고통이죠.

게다가 우리네 인생은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내 뜻이나 예상과 다르게 삶이 흘러가는 것을 슬프게도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배꽃님이 원하는 모습 즉, 생각과 달리 흘러가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저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배꽃님에게 어떤 글로 응답할 수 있을지 며칠간 고민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예상 밖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득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다르기 힘든 경지이기 때문이지요. 이 고민은 우리 인생 여정에서 예상 밖의 일을 만날 때마다 계속되는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올해 새해 첫날 연휴를 이용해 일본으로 남편, 아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여행 후에는 3월까지 바쁘게 마쳐야 하는 프로젝트 계획도 있었고요.

아! 미리 계획한 여행이었지만, 1월 초 일본 날씨가 예상보다 너무 추웠지요. 게다가 연말연시라고 생각보다 많은 박물관이나 상점들이 문을 닫았답니다. 여기까지는 바쁘다고 철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우리 가족의 실수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계획과 달리 일정이 조금 꼬였지만 그리고 날이 좀 추웠지만 그래도 견딜 만 했어요. 그리고 좋은 추억의 사진도 찍었고요.

문제는 돌아와서입니다. 돌아오자마자 그다음 날 친정 어머님이 갑자기 아프시다고 연락이 왔고 바로 입원 치료를 받았어요. 매일 출근 전, 출근 후 입원하신 어머님을 돌아보아야 했어요. 다행히 차도가 있어서 퇴원하시게 되었는데 퇴원을 하시자마자 시어머님이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왔어요. 위중하셔서 중환자실에 입원 치료 받으셨다가 호전이 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어요. 그러나 그 후 1주일을 못 넘기시고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1월 한 달 동안 예상할 수 없었던 큰일들이 연속되어 저는 거의 ‘무아’의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삶은 살아지더라’는 삶의 진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예측 가능한 듯하면서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지의 것이지요. 이 미래를 어떻게 우리의 통제 안에 둘 수 있겠어요.

그러나 미래가 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잘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고 완벽주의적 강박관념을 발동하거나 ‘결과가 최악일 것이고 그건 너무나 끔찍할 것’이라고 지레 두려워하지요. 혹은 내가 들인 노력이 아까워 더욱 집착하고 나 자신의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하거나 하지 못했던 혹은 해야 했던 일들로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잡고 싶은 미래는 우리 곁에 머무르며 우리의 인내심과 평정심을 시험합니다.

그런가 하면 떠나갔나 싶었던 잡히지 않을 듯한 미래가 어느 날은 성큼 다가와 언제 그랬냐는 듯 내가 그렸던 그림대로 현실이 되는 날이 있지요. 완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은근과 끈기로 하루하루 이어갈 때 기적처럼 어느 날 미래는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기도 한답니다.

배꽃님, 예상 밖의 일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일부러 애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일부러 애를쓰다 보면, 이번에는‘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자체가 마음의 짐이 될 수도 있답니다. 예상 밖에 일들로 마음이 불편하고 고통이 감지된다면 그 대신 내면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요?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이 마음과 접촉하도록 두어 보십시오. 내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어떤 욕구가 좌절된 것인지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내 마음에 돌보기를 바라는 감정과 욕구는 무엇인지. 무엇을 억지로 받아들이거나 더 해보려는 노력보다는 이 순간에 집중해 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는 겁니다. 이해를 원하는 내 마음에 접촉해 봅시다. 계획을 세우고 또다시 대비하느라 분주했던 나의 마음과 좌절된 마음을 살펴보는 거지요.

마음속의 해묵은 상처들이 미래에 대해 더욱 경계하고 불안하게 했다면, 더 많은 대비를 할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나의 상처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마음을 단단히 옭아맬 것이 아니라 멈춰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헤아려 줍니다. 마음의 매듭이 풀릴 때 신기하게도 세상은 살만하고 좀 더 여유 있게 다가옵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일은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있어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억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나에게 보내는 마음의 신호를 읽어 보는 겁니다. 마음의 신호를 따라가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도 나의 내면을 성찰하고 성장시키는 의미가 있게 되지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은 나의 한계를 알아차리는 것, 그런데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깨닫게 하는 비범한 통찰의 기회가 될 수가 있답니다.

배꽃님의 깊은 고민에 비해 짧은 제 답변이 많이 부족할 겁니다. 부족했다면 ‘후회 없이 걱정 없이 지금 여기에서 모든 순간 껴안기’라는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루하루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오늘도 매 순간 삶을 껴안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우리 멋진 학생들에게 ‘삶이 주는 신성한 통찰의 순간’을 기대하며 고정희님의 시 한 부분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면서 고통에게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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