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대학보 97기 수습기자가 되고 싶은 전혜진입니다!”

2016년의 첫눈이 내리던 11월의 어느 날, 나는 이대학보사 면접을 봤다. 이전부터 수없이 고민했지만,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네 학기 활동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3학년을 앞두고서야 이대학보에 들어왔다. 포스터 속 플러스 펜을 쥐고 기사를 고치는 손, 열정 가득한 당신을 기다린다는 문구를 보고 심장이 두근거렸던 게 엊그제 같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수습기자로 시작해 정기자, 차장기자, 부장기자까지 쉴 새 없이 달렸다. 절대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흘렀다. 40번의 마감을 보내고 마지막 마감만을 남겨둔 지금, 학보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첫 기획 회의, 첫 취재, 첫 마감, 그리고 첫 신문. 모든 것이 낯선 것투성이던 학보사가 이제는 집보다 편해졌으니 학보사를 떠날 생각에 아쉬움이 앞선다.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기사를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한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떠올려본다. 매주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휘몰아치는 기획안과 취재, 기사 쓰기로 평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축적된 피로로 기절한 것처럼 잠을 잤다.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늘 학교 곳곳에 촉을 곤두세우고 다니는 것은 오랜 습관으로 굳어졌다. 칼보다 강한 펜의 무게를 알기에, 때로는 그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쉽게 펜을 들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이화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일조한다는 성취감,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잘 봤다고 말해주는 짜릿한 경험은 나를 계속 이대학보 기자로 남게 했다. 학보사 기자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할 경험을 하고 만나지 못할 사람을 만나면서 조금씩 성장하기도 했다. 캠퍼스 방방곡곡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두 발로 직접 뛰며 취재했던 뜨거운 기억들은 학보사를 퇴임하더라도 오랜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2년 임기를 끝맺는 마지막 취재는 한국여기자협회 김균미 회장 인터뷰였다. 학보사에서 부장 직함을 달고 있지만, 실제 언론사의 30년 경력 대기자를 앞에 두고 인터뷰 할 생각을 하니 다시 수습기자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인터뷰는 이내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인터뷰 이후 점심을 함께하며 궁금했던 점을 이것저것 여쭈기도 했다. 언론사의 팩트체킹 시스템, 종이신문의 미래, 여성 보직 간부의 부족 문제 등 언론사가 마주하고 있는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듣고 돌아왔다. 마지막 취재였음에도, 막연히 생각했던 ‘기자’라는 일에 대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학보사 임기를 마치고 다시 새 출발선에 선 지금 이 순간, 그동안 했던 모든 취재를 하나씩 떠올려본다. 어느 하나 쉬운 적이 없었다. 글쓰기가 좋아 들어왔지만, 부장 임기를 마치는 지금까지도 좋은 기사 쓰기란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학보사 기자로 보냈던 2년간의 대학 생활은 미래의 나에게 피와 살이 되는 자산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대학보 1572호 마지막 마감을 보내며 시원섭섭한 마음은 뒤로하고, 언젠가 학교 안에서 땀 흘렸던 경험을 발판삼아 사회를 향해 다시 펜촉을 들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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