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소담 배꽃 수다방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그래픽=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한 배꽃님이 보내주신 사연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하루 종일 일과를 함께 하는 것이 생활이었어요. 당시에는 학교를 멀리 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만큼 어머니와 친밀했지만, 거기에서 오는 상처도 많았습니다.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말투에서 비롯된 사소한 언쟁이 큰 다툼으로 번질 때도 있었죠. 저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에 감사하지만 이제 하나의 주체라는 인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대학에 온 이후로 각자의 시간이 주어지게 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선에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와 저, 둘 다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고민이 많은 이화인들을 위해 편하게 마음과 심리적인 지식을 나누는 배꽃수다방이 2학기에 다시 오픈했어요. 여러분들이 주신 사연들을 읽다보니 마음 한 구석이 일렁이네요. 우리 함께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멈추어 내 마음을 살피는 시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사연을 주신 배꽃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싶지만, 모녀의 생각이 다르고 욕구가 다르다 보니 어떻게 편안한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되네요.

보이지 않지만, 사람 사이에는 심리적 경계가 있어요. 심리적 의미에서 경계란 타인과 분리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과 타인의 분명한 경계는 내가 정말 누구인지 알고 나 자신이 아닌 것을 거부할 수도 있으며 타인과 분리된 나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분명히 자각하고 누리는 것이죠. 이 경계가 너무 경직돼 있으면 지나치게 독립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잘 주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요. 반면 너무 느슨하면 상대에게 너무 쉽게 자신의 많은 것들을 침범하도록 허용해 자신의 개성과 존중감을 잃어버리게 되죠. 그래서 배꽃님의 고민처럼 사람 사이의 경계는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랍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가족 중심의 문화에서는 가족 간의 경계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고민하지요. 부모와 자식 간의 경계는 자녀가 성장하면서 조금씩 변하게 되고 역할도 바뀌게 되는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배꽃님은 중·고등학교 시절 일과를 어머니와 함께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어머니의 헌신에 감사한 마음도 크지만, 한 주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도 크네요. 딸에게 많은 것을 헌신하고 공유해온 어머니에게는 이 변화가 서운하고 낯선 일일 수도 있지만요.

배꽃님이 현재 느끼는 불편감은 가족의 심리적 경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배꽃님이 겪는 현시기는 청소년기를 벗어나 완전한 성인으로 이행하기 위해 많은 생각과 고민, 시도와 노력이 혼재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심리적 독립을 이뤄가는 것이 청년기의 중요한 발달과업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배꽃님은 자신에게 필요한 중요한 발달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 중일 거예요.

 배꽃님이 어머니에 대해 가지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현재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어머니와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요? 서로의 욕구, 감정, 차이점, 상처,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경청하는 시간, 서로 원하는 것들을 표현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거죠. 서로에게 갖고 있는 기대도 표현해보세요. 이때는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말을 끊거나 끼어들지 않고 잘 들어주는 원칙을 세워 대화해보세요. 또한, 서로를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말은 하지 않는 원칙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억하세요! 한 번의 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대화는 시작일 뿐이죠. 결론을 내려고 하기보다는 서로를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다짐이나 변화를 촉구하기보다는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 보세요. 그리고 가족 간의 건강한 경계에 대해 같이 의논해 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가족치료의 대가인 미누친(Minuchin)은 명확한 경계, 밀착된 경계, 경직된 경계를 구분하면서, 가족이 기능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경계가 명확하고 서로 간에 심한 방해나 장애 없이 활발한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가족치료는 너무 밀착된 경계는 분명한 경계를 가지도록 조정하고, 너무 경직된 경계는 개방적이고 융통적인 경계를 가지도록 가족 간의 의사소통과 체계를 바꾸는 작업을 합니다. 특히, 밀착된 경계는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얽혀있어 사소한 일에도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 서로 깊이 관여하고 간섭해 나의 일 너의 일 구분이 없어지고, 감정과 욕구도 서로 분화되지 못하고 한 덩어리로 얽혀 있으면 쉽게 혼란에 빠지고 각자의 생산적인 에너지도 생겨나지 않죠.

건강한 경계는 서로 배려와 관심은 가지되 개인의 개별성과 독립성은 인정해주고 새로운 변화를 위한 의사소통으로 원활하고 공정한 협상을 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한 사람이 가정에서 너무 과도한 역할을 가지지 않도록 가사도 서로 분배하지요. 눈치채셨겠지만, 건강한 경계를 만드는 것은 단번에 되지 않고 지속적인 관심과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건강한 가족이라고 생애 주기를 통하여 전진만 하는 것은 아니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지만 크게 보면 앞으로 나아간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다’라는 보웬(Bowen)의 글을 떠올리면서 저도 우리 가족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 어려운 일을 해내지 말입니다’라는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가족 간의 바람직한 경계와 심리적 독립을 위해 분투할 배꽃님과 이화인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오늘의 수다방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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