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극의 딜레마를 해결한 명작

시대극과 정치적 올바름이 공존할 수 있을까. 오늘날처럼 인종, 성별, 성정체성 등 다양한 가치가 혼재된 다원적 사회에서 그러지 못했던 과거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단일적이고 정치적 올바름에 무관심한 사회라면 걱정을 할 필요 없겠다. 하지만 다문화가 진행된 지 100년이 넘었고, 나름 선진국으로서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려 노력하는 영국 정도 되는 나라라면 그러한 고민을 할 법하다. 2013년에 제작돼 각종 시상식을 휩쓸고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영국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 2013~)’는 이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반 영국 버밍엄에서 위세를 떨치던 갱스터 집단 ‘피키 블라인더스’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제국주의라는 왜곡된 방식으로 비백인 인종이 유입되던 시점이고, 여성은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며 동성애는 범죄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백인 남성 문화의 정수인 갱스터 집단을 다뤄야 한다. 다양한 인종, 여성 캐릭터의 확대, 성정체성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현대 영미권 미디어 트렌드와는 정반대로 흘러갈 여지가 충분하고도 넘쳤다.

하지만 피키 블라인더스는 소수자의 역사를 지우지 않음으로써 이를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극 중 시즌1의 에피소드1은 당시 영국으로 이민 와서 살고 있던 중국인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틈틈이 극 속에 등장해 당시 있던 사실을 그대로 고증하는 역할을 수행해낸다. 절대적으로 소수였던 흑인도 피키 블라인더스의 멤버로 등장해 당시 영국인들의 인종차별적인 모습을 꼬집으며, 주인공인 쉘비 가문은 애초에 ‘순혈’ 영국인이 아닌 집시의 피가 흐르는 그래서 때때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갱스터임에도) 멸시받는 이들로 그려진다.

여성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시대극에서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적었다는 이유만으로 극에서 지워버리기 마련이다. 피키 블라인더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간의 조정을 택한다. 사실 실존했던 피키 블라인더스는 1910년대에 소탕돼 20년대에는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영국사에서 1918년은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됐던 일종의 분수령이었다. 제작진은 극 중 피키 블라인더스의 활동기를 1920년대로 조정해 이전 시대보다 확대된 여성의 역할을 선보이고자 했다. 여성 주인공들이 당시 있었던 총파업에 참여하는 에피소드를 삽입한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정부 비밀요원, 매춘부, 노동자, 공산주의자, 망명한 러시아 대공녀까지. 제작진은 당시 시대에 존재할 수 있었던 여러 형태의 여성상을 끌어와 주체적인 캐릭터로 해석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실존했던 갱스터이자 제목이기도 한 피키 블라인더스는 봉긋한 모양(peaky)의 모자에 면도칼을 넣고 다니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상대방의 눈을 그어 장님(blinders)으로 만들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즉 잔인한 장면이 종종 연출된다. 하지만 잔인한 장면에서 눈을 감는 번거로움을 감안한다면 볼 만한 드라마다. 진정으로 잔인한 것은 평화로운 화면 속 각종 혐오와 배제로 얼룩진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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