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history but He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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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은(정외·15)
  • 승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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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 그 여자의 이야기

8월 14일, 세계‘위안부’기림일에 영화 ‘허스토리’(2018)를 관람했다. 의미 있는 날인만큼 감독과 연출, 배우 김희애가 참석해 관객과의 토크형식으로 GV가 진행됐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두 가지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첫 번째, 사회가 (엄마)에게 부여하는 죄책감이다. 극 중 주인공 친구는 워킹맘이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도우려는 주인공을 말린다. 일하지 말고 집에 있는 딸이나 잘 돌보라는 것이다. 그저 자식이 소위 말하는 ‘바른’길을 가지 않으면 손가락질하며 ‘이게 다 엄마가 애를 제대로 못 돌봤기 때문이야’라며 엄마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 이런 오지랖들로 자식이 조금이라도 못난 모습을 보이면 엄마는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는다. 이는 곧 엄마에게 자식이나 일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사회분위기와도 연관된다. 그런데 아빠는 퇴근 후 아이와 잠깐 놀아주기만 해도 ‘퇴근 후 피곤할 텐데도 아이를 놀아주는 멋진 아빠’다.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아니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라는 말을 내뱉는다.

조금이라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제 남의 집에 신경 끄고 입을 닫자. 엄마가 눈치 보는 사회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아니, 지긋지긋하다.

두 번째는 영화가 소재를 그리는 방식이다. 일본군 성노예는 감정적인 소재다. 그럼에도 감독은 흔한 방식인 ‘슬프고 불쌍하게’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주인공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한다. ‘피해자답지 않게’말이다.

극 중 “재판에서 지면 어떡하냐”는 할머니의 걱정에, 원고단 단장은 지면 어떠냐며 50여 년을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게 살아온 할머님인데, 일본에 가서 대체 왜 그랬냐고, 사과하라고 손가락질이라도 실컷 하고 와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렇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건 사과 하나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들에게 ‘자기가 돈 벌려고 자발적으로 했다가 이제 와서 늙고 돈 없으니 피해를 주장 한다.’던, 어디선가(같은 날 아침 전 충남도지사 성폭행 판결 포털 기사에서) 본 것 같은 대사가 있었다. 실소가 나왔다. 여성으로 태어나 오늘날까지 고추 하나 달린 걸 상패쯤으로 여기는 남성에게 이런 말들을 듣고, 좀 배웠다는 남자는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세상. 그렇기에 영화 속 할머니들의 당당한 모습은 이 영화를 완벽하게 멋지게 만들었다.

“사과를 해라! 그래야 짐승에서 인간이 된다. 지금 기회를 줄게. 부디 인간이 돼라···.”

관객과의 대화 중 제목에 대해 감독은 결과적으로 ‘허스토리’라는 제목이 많은 남성 관객(그리고 여성 등도)을 배제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중간 뉘앙스인 '관부'(할머니들이 일본에 가서 한 재판 이름)가 후보에 있었다고 했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보다 거부감 없이 허스토리를 피했던 관객들을 데려올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작품이 담는 메시지가 너무나 명확했다. 허스토리, 히스토리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