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네 대학교(Linnaeus University)

  스웨덴에서의 첫날, 누군가 무서운 속도로 내게 달려와 몸을 부딪치고 갔다. 처음에는 인종차별자로 오해했지만 알고 보니 발달장애인이었다. 이후에도 버스에서, H&M에서, 식당에서, 도서관에서 수도 없이 많은 발달장애인을 마주쳤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 보조자와 함께 있기도 했고 혼자이기도 했다. 내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곳은 곧 그들에게도 일상이었다.

  장애인이 편견 섞인 눈초리를 받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이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웨덴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덕분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탈시설 정책은 그들을 비장애인과 공동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스웨덴은 1999년 이후 모든 장애인 거주 시설을 폐쇄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정책이다. 초기에는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지금은 다들 당연하게 생각한다. 정책이 우선하고 인식이 따랐다.

  스웨덴에서 겪은 문화충격은 대부분 장애인 인권과 관련돼있다.

  교환학교 도서관 홈페이지 첫 화면엔 독서를 하기 어려운 학생을 위한 서비스가 안내돼있다. 학생들은 오디오북, 점자책, 토킹북 등을 빌리거나 제작을 신청할 수 있다. 이 역시 모든 국민의 정보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이다.

  놀라운 점은 시각장애뿐만 아니라 난독증과 ADHD를 가진 사람, 트라우마로 활자를 읽기 힘든 사람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질환을 개인의 노력 문제로 치부하는 한국에서와는 다른 인식이 엿보인다.

  더불어 서비스 사용자는 장애를 증명하거나 어떻게 장애를 가지게 됐는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특정한 기준으로 구분 짓지 않고, 자신의 상태에 따라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서비스라는 점이 인상 깊다.

  스웨덴의 장애인 복지 서비스는 장애로 인한 불편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정책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선도한다. 발달장애인 시설 폐지 법안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장애인 부모들의 반대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일상이 당연해졌다. 

  나 역시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과 이방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수많은 장애인과 마주치며 그들은 각자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 아닌 몸으로 이해했다. 첫날 부딪힌 사람에게 느꼈던 불쾌함은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의 편협함일 뿐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피상적이고 시혜적인 정책은 장애인을 타자의 위치에 머물게 한다. 한국에서는 지체장애인의 이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실정으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선명한 경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런 노력 없이 사회적인 인식이 서서히 바뀌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의지와 행동만이 장애인과 장애에 대한 국민의식을 개선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인격체임을 전제하고, 비장애인이 누리는 모든 권리를 장애인 역시 당연히 누릴 수 있도록 보조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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