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배제하는 언어인가요
장애인을 배제하는 언어인가요
  • 김미현(커미·15)
  • 승인 2018.0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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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에 다양한 차이 있어
배제의 언어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

  누군가가 말했다. ‘존재를 지우는 사회에서, 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해야 한다.’ 다른이가 반응했다. ‘그런데 가시화라는 말은 시각장애인 배제적 용어예요. 대체어를 찾아보아요.’ 또 다른이는 ‘본다, 듣는다는 말도 그러면 다 사용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아 근데 그거는 채식하는 사람에게 식물, 미생물은 안 불쌍하냐고 묻는 느낌인데’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Leave No One Behind.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다양한 투쟁들이 있다. 추상적 고민들 속에서 어느 지점을 변화시키려 할지 판단해야 한다. 가시화라는 단어는 시각장애인 배제 단어일까. 감각&기능과 관련된 은유적 표현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인사이트, 가시화, 알아듣다 같은 기능 비유적 표현들. 비하적이지 않지만 일부 장애인을 포함하지 않는 은유적 표현들. 과연 장애인을 배제하는 걸까.

  시각장애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싶어요. 그리고 ‘가시화/비가시화’라는 단어가 시각장애인 배제적이라 대체한다면, ‘아름답다’는 말도 대체해야 할까요? 시각적인 게 큰데… 또한 시각적 표현을 다 사용하지 않는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걸까요?”

  수전웬델의 <거부당한 몸>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떤 능력이든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감각과 기능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 언어 체계에 많은 제한이 걸릴 것입니다. 저는 장애인이지만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또한 청각장애의 경우엔 시각적 감각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모든 시각적인 표현 사용을 지양하는 건, 청각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남았다. 장애인 배제적인 언어임을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놔두자는 건가? 아니면 배제가 아닌 차이의 영역이니 그냥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걸까? 후자로 생각이 기울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든지 감각에 대한 다양한 차이가 있다. 차이들에 대한 언어를 지우는 건 오히려 서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도록 작용할 수 있다. 장애에 따른 경험과, 현재 가지고 있는 감각에 따른 정체성을 말이다.

  따라서 어떤 감각적, 기능적 표현에 대해 모두 대체어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체어를 찾는 게 가능하지 않으니 시도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차별이 아니라는 판단과, 언어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고민한 결론이다. 차별과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앞에서 언급한 은유적 표현은 차이의 영역에 가깝다.

  ‘가시화’라는 말은 현상을 드러낸다는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대척 단어로 ‘비가시화’가 함께 쓰이고 있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본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며, 어떤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본 은유를 사용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감각의 언어를 공유하는 건 장애인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은유적 표현을 공유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바꿔야 할 건 단어가 아니라 다름에 위계를 두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차별적 마인드 아닐까.

  물론 차이가 차별로 기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어떤 단어든 쓰이는 상황, 맥락 모두 고려해야 한다. 감각&기능 은유적 표현이 모두 괜찮은 건 아니다. 소수자의 불기능에만 집중한 은유를 다수자가 사용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블라인드 채용’은 전맹인 사람의 시각차단이라는 불기능만을 집중하여 다수자의 은유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비가시화’라는 단어는 ‘가시화’와 함께 작용하지만, ‘블라인드’는 ‘맹인, 보지 못한다’는 뜻에서만 착안해 사용하는 거라 불편한 은유이다.

  기능적 은유와 불기능적 은유를 모두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 괜찮음과 불편함을 명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해당 고민지점을 공유하고 추상적 고민 속에서 구체성을 잡아간다. 또한 어떤 고민을 하더라도, 언어사용변경 자체가 궁극적 문제해결은 아니다. 문제는 항상 연결되어있으니 항상 다른 고민들도 같이하자. 아자자.

2018년 5월28일(월)일자 1561호 10면 학생칼럼 ‘장애인을 배제하는 언어인가요’가 지면상의 이유로 부분 편집, 삭제됐음을 알립니다. 전문은 인터넷 이대학보(inews.ewha.ac.kr)과 페이스북(facebook.com/ewhaweekly)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