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회화 수업에서 새로운 학생이 오면 늘 자기소개를 한다. 벌써 같은 자기소개를 30번도 넘게 했지만 매번 가장 흔히 물어보는 질문이 취미가 무엇이냐이다. 사실 이 질문은 초등학교 이후 늘 받던 질문이고 한 번도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야 취미가 없으니까. 과연 나만 그런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면 결국 독서, 음악감상, 영화 감상 이외의 취미를 가진 사람은 소수다.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여행에서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수많은 취미 관련 서적과 잡지들을 보면서 어쩐지 부러워진다. 요리, 정원 가꾸기, 자전거, 운동, 사진, 악기, 일러스트 등 다양한 종류의 잡지가 수두룩하다. 

  우리나라는 최근 힐링이나 자존감에 관련된 책은 많이 나오지만 취미 생활에 대한 책들은 확실히 메이저는 아닌 것 같다. 사실 취미 생활을 위해서는 시간, 돈, 의지가 한꺼번에 요구된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그 중 하나라도 갖고 있으면 성공한 거다. 나의 경우 이런저런 분야에 잠깐씩 관심을 가지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컬러링북이 유행할 때 잔뜩 사놓고 그림 하나 완성하지 않았고 글이라도 써볼까 다운 받아놓은 모바일 앱은 한번 쓰고 방치돼 있다. 물론 나에게도 충분한 변명거리가 있다.

  일단 시간이 없다. 학교와 학원을 다니고 주말에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거나 피곤에 찌들어 침대에 쓰러지는 것이 일상이다. 항상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있다. 둘째로 세상에는 쉽고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다. 유튜브에서 4년전에 올라온 빅뱅이론 클립을 보는 것이나 과금하면서 모바일 게임을 하는 등 누워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머리 쓸 필요도 없이 단순하게 재미있다. 셋째로 높은 수준을 바란다. 트위터나 조아라 등에서 자신의 글이나 그림을 올리는 사람들의 경우 꽤나 열정적으로 취미 생활을 하는 부류이다. 그것을 소비하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평가한다.  

  우리는 좀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걸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좀 못해도 된다.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뭐든 유튜브보다 재미가 없다. 시간은 당연히 내기가 싫고, 힘든 몸을 이끌고 또 다시 힘든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분명 재미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지금 보면 앞뒤도 안 맞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잔뜩 써 놓았지만 정말 매일매일 즐기면서 쓰고 그렸던 기억이 있다. 요즘의 우리에게는 그런 이윤도 없고 평가자도 없는, 오로지 자기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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