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담 소담 배꽃 수다방
소담 소담 배꽃 수다방
  • 이대학보
  • 승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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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다는 이화인들이 많다. 비록 교정 내 수많은 이화인이 존재하는 만큼 그 고민도 각양각색이겠지만, 동년배로서 할 만한 고민은 크게 상이하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고민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많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는 판단하에 본지는 학생상담센터 오혜영 소장과 함께 ‘소담 소담 배꽃 수다방’을 연재한다.

  사연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대학보 공식메일(hakbo@ewha.ac.kr)로 수합된 것 중 무작위로 선정되며, 선정되지 않은 사연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전량 폐기된다. 최소한의 신원 확인을 위해 학번, 학과, 이름이 첨부돼야 하지만, 지면상 익명은 보장된다. 메일 제목은 ‘사연접수_소담소담배꽃방_이름_학번’으로 하면 된다. 

 

   한 배꽃님이 보내주신 사연      

  과거에 미련을 두는 것, 가능하지도 않은 ‘만약에’를 너무 자주 생각한다는 것이 요즘 가장 큰 고민입니다. 물론 지나간 일을 흘려보내라는 말이 있지만 생각만큼 그게 쉽지는 않잖아요? 

   자기 전에 누워서. ‘그렇게 말하지 말걸. 내가 이렇게 행동했으면 모두가 즐거웠을까’ 등의 생각을 합니다. 예전엔 그냥 흘려보냈지만 요즘은 후회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어 힘이 듭니다. 

 

 



학생상담센터 오혜영 소장

 

  사연을 주신 배꽃님, 지나간 일들에 대해 자꾸 후회가 돼 고민하고 있군요. 내가 잘못했던, 실수했던 일들에 ‘만약에’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는 경험. 다들 조금씩은 해보셨을 텐데요. 

  과거에 대한 후회는 사람을 고통스럽고 답답하게 하지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계속 드는 나에 대한 못마땅한 느낌, 후회스런 감정은 마음속에 뱅뱅 도니까요. 때로는 대인관계에서 오는 석연치 않은 반응이나 애매한 반응이 남아 우리를 더더욱 괴롭히기도 하죠. 그리고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내가 그 때 이 말을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로 밤을 새우기도 하죠. 핀잔이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되는 날이면 몇 날 며칠 그 생각이 떠나지 않지요. 그 말들 하나하나가 잘하려고 노력한 내 심장에 꼭 박혀서 다음 번 그 사람을 대할 때에는 두렵기까지 하구요! 

  우리는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학습의 동물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당할 때에는 나를 샅샅이 뒤져 내 행동과 말을 부정하고 자책하며 감정의 블랙홀에 빠지는 감정의 동물이기도 하답니다. 불쾌한 느낌, 속상한 마음은 우리의 생각을 실수하고 아쉬웠던 부분에 초점 맞추게 하고 도돌이표처럼 계속 맴돌게 하지요. 

  내가 내 행동을 돌아보고 시행착오를 거울로 삼아 긍정적인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면 배꽃님의 고민은 생산적인 고민이죠. 그러나 내 행동을 돌아볼수록 후회와 불쾌한 감정에 휩싸여 혹시라도 수면을 방해하거나 대안관계를 힘들게 한다면 이 고민은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 패배적인 고민이 될 수 있어요.  배꽃님의 고민이 어디에 해당할지 한번 점검해 보세요.  

  생산적인 고민은 계속 할수록 도움이 되지만, 자기 패배적인 고민은 하지 않을수록 도움이 되니 고민을 멈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고중지법’이나 ‘주의 재배치 기법’ 같은 것들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요. 사고 중지법은 ‘내가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후회스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를 자각하고 자각하는 순간 자기에게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사고를 멈추게 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아무리 해도 그 사고가 떨쳐지지 않아서 노란 고무줄을 손목에 차고 자기를 괴롭히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고무줄을 당겨서 사고를 조절하기도 했습니다.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압도할 때, 우리는 본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뇌 회로를 가동시키죠. 주로 ‘①부정적인 느낌→ ②자책, 후회→ ③자기상에 부정적인 것을 통합→ ④일이나 관계에 대한 동기 저하’의 과정으로 사고의 흐름이 이어집니다. 이 때 ①에서 ②로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자동적이기에 인지치료의 대가인 Beck은 ‘자동적 사고’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도움이 안 되는 사고라고 해서 ‘역기능적 사고’라 불리기도 하구요. 배꽃님도 너무 당연하게 또는 자동적으로 자책하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느낌을 다루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다음으로 부정과 분리는 다르다는 걸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대인관계 또는 완벽한 대인관계에 대한 소망이나 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관념에서 자기를 분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던 바에 도달하지 못해 낙담하고 실망할 수는 있으나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쏟았던 과정을 부정하지 않아야 하구요. 그것이 우리가 고민의 방향을 정해야 할 지점입니다. 부정적인 느낌이 들면 그 느낌을 제거하기 위해 내 행동을 자책하고 부정하고 싶은 본능이 우리 내면에서 꿈틀대니까요. 부정할수록 그 생각에 집착하게 만들지만, 분리는 다릅니다. 분리는 이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정서와 관련된 모든 생각과 신체적인 감각도 완전히 경험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잠깐 멈춰 내 부족한 느낌을 수용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수고하고 노력한 부분을 떠올리며 나를 응원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회복탄력성(resilience)’입니다. 100% 맘에 들지 않아도 어느 정도 내가 잘 한 부분을 찾아내고 나에게 긍정적인 힘을 실어주는 게 오히려 삶과 대인관계에 더 강력한 효과가 있답니다. 

 배꽃님, 후회스러운 느낌,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면 한번 생각을 멈춰볼까요?  “너 참 지금까지 수고했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 보세요. 부족한 나를 자책하며 내몰기보다 충분히 받아들이는 수용적 경험은 우리를 고요한 내적 평화와 새로운 에너지로 안내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