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연변에서 울리는 학교 종소리

7월4일∼25일 봉사일정, 길다면 길 수도 있는 기, 봉사만을 생각하며 떠난 사람을 사실 적었다.

이국에 대한 기대감, 다른 학교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으니까. 특히 봉사 지역이 조선족 자치 주였기 때문에 탈북한 북녘 동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중국행 결정에 직접적 힘을 발휘했다.

우리가 맡은 봉사는 주로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처음 한 주동안 가르칠 과목을 결정하고 모의수업을 하며 2주간의 봉사를 준비했다.

한낮에는 감초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했는데 중국친구가 ‘약국의 감초’라고 말해서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다.

특히 우리 학교 친구들은 모의수업ㅇㄹ 철저히 준비해 교육봉사의 질을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한 주가늬 준비를 끝내고 량수, 등불사, 신화 소학교로 흩어져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음악·체육·영어·과학 등 하루 5시간 씩 짜여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한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3시경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우리들의 숙소로 찾아온다.

7시까지 온몸에 멍이 들도록 아이들과한게 놀다보면 어느새 날은 어두워 지고 온몸은 담과 피곤에 절곤했다.

제대로 씻을 수 있는 곳도 없었고 개끗한 화장실도 없었지만 우리는 아이들과 뒤노는 것이 그저 좋았다.

바쁜 일정이 마무리 되고 한국에 오기 전날 백두산에 갈 수 있었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 천지에 이르렀을때 그 시니함과 장대함이란…. 빠르게 이동하는 안개는 천지의 신비함을 더했고 정상의 차가운 바람은 온몸울 얼어붙게 했다.

오래된 꿈 속을 뒤척이다 돌아온 듯 하다.

주고 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다.

봉사는 어떤 정해진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헌신적인 사람만이 하는 것도 아니다.

봉사는 희생보다는 즐거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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