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제 실시 1년 평가

심판의 날이 왔다? 시행 1년이 돼가는 학부제, 학부생으로 들어왔던 신입생들은 드디어 전공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다.

그러나 교육부의 재정지원방침에 의해 급작스럽게 학부제를 시행하게 된 대부분의 학교들에서 시행초부터 제기돼온 문제점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본교 인문학부는 재학중 성적순에 따라, 약대, 자연대는 시설에 따라, 나머지 단대들은 학부생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따라 전공이 결정된다.

인문대의 경우, 전공은 성적순 선발임에도 불구하고 복수전공은 제한없이 허용한다는 모순적인 원칙에 학부생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으나 학교측은 별다른 해결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본교 교무처장 홍정선교수(법학과)는“아무리 소수라도 비인기학과 전공강의를 개설하고, 수강생이 많은 과목에 대해서는 분반을 통해 해결할 것”이며“1월20일경 전공선택이 최종결정되는 만큼 개강이전에 신속히 대응, 문제점을 최소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94학년부터 학부제를 시행해 온 한양대는 전공학부제라는 이름으로 학과통합을 한 공대 ·화공·공화, 섬유, 세라믹공학군에서 화공·공화 전공에 학부 2년생의 85%가 몰려 수강신청이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학교는 수강신청을 재실시, 학생들이 다행히(?) 학과별로 분산돼 성적에 따른 제한은 없었으나 97년부터는 이에 따른 전공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연세대 또한 상경대 여론조사 결과 학부생의 90%가 경영학과를 지망하는 것으로 밝혀져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상경대학측은 성적에 의한 배분은 없을 것이며 문과대와 공대의 경우를 참고하겠다고 밝혔으나, 참고대상이 되는 이 두 단대는 결과적으로 학점에 의해 전공이 결정되는 상황에 있다.

상경대 단대지인 상경신문 편집장 지용민군(경제·2)은“학교측은 자기 학과만 무사하면 그만이라는‘자기보존심리’에, 학부생들은 정원 안에만 들면 그만이라는 실리주의적 사고에 젖어 공동체가 무너지고 파편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또한“갑작스레 학부제를 선택한 후 또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무성의한 학교당국과 이에 관한 인식을 하나로 결집, 불합리한 면을 개선하지 못하는 학생회 모두 책임이 있다”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아주대 또한 인기학과목에는 최고 4백여명이 몰려, 학교측은 분반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하나 교수충원이 선행되지 않아 한 교수당 80∼90명의 학생들을 담당하고 있고 1학년생들은 과목 선택에 학년 제한이 없어 3,4학년 과목을 선택, 강의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영문과 지망학생이 97%, 신방과가 70%를 차지한 서강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주대와 서강대는 학고 소신지원을 가능케 해 학부제의 기본적인 취지를 나름대로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아주대는 복수전공 지원에 제한을 두지 않아 의학부와 법학부를 제외한 나머지 학부는 계열별 수평이동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최소전공학점이 이수되면 전공으로 인정, 많게는 4개 전공까지 취득할 수 있다.

11월 초 1학년의 전공선택이 끝난 서강대는 소속학부에서 제1,2전공을 필수로 하고 있으며 추가로 제3전공이 선택이 가능하다.

부전공제도가 이미 활발했기에 서강대는 학부제를 시행하기에 좋은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학부제의 이상적인 모델로 보통 유럽의 대학을 예로 든다.

그러나 서강대 교육개혁위원장 서호섭군(전산·3)의 말처럼 대학에 대한 규정이 교양을 갖춘 사회인이 아닌 전문인력의 양성이던 한국의 현실에 이를 그대로 접속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70년대에 존재해온 계열별 학부제의 시행착오를 90년대 대학은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결국 이는 한국적 토양에 맞는 학부제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서는 계속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 서강대는 자치활도엥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내년 초 과학생회와 동일선상에 있는 학부계열학생회를 건설할 예정이다.

한편 한양대 공대는 교학협의회 건설을 통한 학교와 학생간의교류통로 마련과 공대발전위원회 강화를 통한 교육·교과과정 연구를 진행 할 계획이다.

오랜 논의기간없이 시행된 학부제는 그 결과 단기적인 사고에 머무른 채 상층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직접적인 수혜자인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권한은 지극히 미비한 형편이다.

제도 자체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이를 시행할만한 교육여건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부제는‘에러투성이의 프로그램’일 수 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폭은 넓으나 깊으는 없는 학문’추구의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교육여건을 재정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 것이다.

한편 이 제도가 제기된 배경이 현사회의 기업이 요구하는 다기능인력창출이라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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