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의견수렴기구 점검

뭔가 정말 맘에 안들 때가 있다.

학생이 학교의 엄연한 일원이라는 건 심심찮게 들어왔고 또 실제로도 맞는 말 같지만, 이건 진짜 아닌데… 뭔가 잘못되고 있는게 틀림 없다고. 그런 생각이 들땐 애꿎은 세상 탓을 하거나,‘내가∼라면 이렇게 할텐데’같은 공연한 상상이 아니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런걸 이야기 할 곳은 있을까. 요즘 장문의 대자보가 이화를 물들인다.

총학생회에서 게시한‘이화인이라면 꼭 보세요’로 시작되는‘학교학생협의회(교학협의회)’1차회의보고. 올해로는 처음 열린 지난 9워4일(화) 교수와 학생이 만난 자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의 결과가 남았다.

◇ 학교 정문 앞 공터에 관해 ▲ 바닥에 보도블럭과 벤치를 설치한다 ◇ 장학금에 관해 ▲ 투명성 보장을 위해 장학금명·금액·기준·내역·수혜자명단을 각과, 단대 게시판에 공고한다 ▲ 학생들의 자발성 유도를 위해 장학금소개 및 신고기간을 각과, 단대 게시판에 공고한다.

◇ 도서관에 대해 ▲ 5층 공중전화기를 증설한다 ▲ 도서 검색용 단말기에 희망도서신청 메뉴를 삽입한다 ▲ 졸업생의 경우 동창회사무실에 동창회비를 내고 이용증을 발급받으면 열람·복사를 할 수 있게 한다.

위의 내용에 있어서 학교측과 학생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총학생회는 제안의 상당부분이 수용돼 만족하고 있고, 이에 대해 학생처차장 전길자교수(화학과)는“사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만나 자세한 부분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이 서로에게 매유 유익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내용외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미묘함이 엇갈린다.

우선 학교·학생간의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인 교학협의회는 이름이 두개다.

학생들이 부르는‘학교학생협의회’와 학교에서 부르는‘학생문제간담회’가 그것이다.

거기다 초기에 있었던‘교수·학생협의회’란 이름까지 합치면, 이 기구가 학교와 학생이 동등히‘협의’하는 자리냐, 학생들의 문제를 건설적으로‘해결’하는 자리냐를 놓고 벌였던 줄다리기는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게 계속디고 있는 듯하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장 윤민화양(사복·4)은 이렇게 말한다.

“명칭은 결정권과 연관되므로 중요한 쟁점임에 틀림없지만, 현재와 같이 학생의 입지가 무력한 상황에서 당위에 의해 결정권을 주장하는 것은 소모적일 수 밖에 없다”고. 대중적 힘이 기반돼야 상승할 수 있다는 그는 또한 현재의 상층중심논의과정이 대중적 참여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타대는 어떠한가. 고려대는 같은 역할을 가진 기구로서 학생문제협의회가 있으며,그 산하에 재정소위원회와 후생복지소위원회가 있어 각각의 사안에 대한 전문성을 담보한다.

연세대에서 이와 비슷한 위상의 교수학생협의회가 있고, 경희대의 경우는 학생들에게 강의개설권도 있어 학교에 제안한 강의의 반수 이상이 수용되는 경향이다.

또한 성균관대는 교수협의회·직원노조·총학생회의 대표가 사안에 관계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교3주체의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볼 때 성균관대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본교 총학생회는 교육개혁국의 경우, 강의평가팀·학부제팀·제정팀으로 나뉘어 각 분야별로 지속적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개편이 학생들에게‘∼팀은 ∼사안에 정통하다’는 인지도를 발휘, 지속적 이월을 가능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것은 또한 학교 전체의 움직임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의 의견이 수렴되어 학교에 하나의 정책으로 입안되는 과정은 바늘구멍만큼이나 작다.

그리고 각자의 웅웅거림은 흩어져 있을땐 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함께 모여 커다란 울림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그 통로를 넓힐 수 있다.

다음 주요안건은 수강신청제도·사회봉사학점·공학관시설문제이다.

단순한 복지차원의 불편함으로부터 학교의 일주체로서 행정전반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문제제기까지. 우리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언제라도 마련돼 있음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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