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ㅡ총론: <1> 왜 문화인가? 「문화의 동요」를 넘어 「문화정치」를 향하여 왜 문화인가? 「왜 문화인가?」라는 질문은 어떤 당혹감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문화」가 갑자기 개념으로 여겨지지 않고 문제점으로, 그것도 분석적인 문제점이 아니라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역사의 움직임으로 여겨지게 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화를 말한다는 것은』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언제나 문화에 반하는 것』이 되기 쉽다.

문화의 문제화는 정치와 경제투쟁의 패러다임이 그 효율성을 잃었기 때문에 그 대신 투쟁화되지 않았던 영역을 쟁점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문주화의 진전이 삶을 보다 풍부하게 완성하려는 문화적 욕구를 자동적으로 폭발시킨 것도 아니다.

문화를 「삶의 방식의 총체」로 정의하는 것도 이제는 문화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문화를 다시 얘기해야 하는 것은 「문화」로 모든 것을 풀 수 있어서가 아니라 문화가 경제, 정치, 계급, 예술 등에 걸친 역사적 변화들의 전반적인 「대응」이었고 문화라는 개념이 새롭고 파악하기 힘든 의미들을 포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화를 전층위들을 가로지르면서 구성된 전반적인 반응이자 대응이라고 정의할 때, 문화영역에 대한 한계설정상의 소모적인 「동요」는 실천을 위한 적극적인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나는 「문화」라는 개념 설정의 혼란과 이 혼란들을 가로지르는 역사적인 모순들을 「문화의 동요」라고 부르고자 한다.

문화의 동요는 먼저 사회·경제의 동요에서 비롯되었다.

서구의 경우 「사회」와 「경제」라는 말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에 시작하여 그 본질적인 발전의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그러너ㅏ 18세기쯤에 이 종교적이괴 형이상학적인 체제의 「야만성」이 공격을 받으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창조된 「뮨명(civilization)」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실상 영국와 프랑스의 대도시 문화에서 결말을 보았고 이 과정의 모든 단계들과 난점이 탐구되었다.

이에 인간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주는 「문화」의 개념이 대두되었다.

이 「문화」는 문명에 대한 다른 비판인 「사회주의」의 개념과 엇갈리거나 교차하면서 내적인 과정과 예술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회적인 개념으로서의 「문화」로 발전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 관념은 특정하고 개별적인 「삶의 방식들」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문화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써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역사적인 적실성을 얻게 된다.

『「산업」,「민주주의」, 그리고 「계급」의 변화들이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나타내는 역사적 변화들, 그리고 이와 밀접히 연관된 반응으로서 「예술」의 변화를 낳는 커다란 여사적 변화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이 「문화」라는 말의 의미에 집중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문화는 「삶의 방식의 총체」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는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과 연관되며, 다시 그 모든 것들이 「문화」라는 의미로 집중될 정도로 문화의 파장이 현격하게 퍼져있다는 것이다.

이제 문화는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등의 영역들과 확대와 전이와 중복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구성력으로 비판과 포섭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힘있는 심급이다.

그러면 이러한 「문화집중」현상을 국내의 상황에서, 특히 예의 「산업화」,「민주주의」, 「계급」, 그리고 「예술」의 측면에서 비추어 보기로 한다.

문화집중 현상의 배경 우선 산업화 이후의 「자본축적의 양식」부터 살펴보자. 현재의 문화를 「소비문화」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본축적과 소비양식의 변화의 구도로 일단 풀어볼 수있다.

정부에 의해 추진된 경제개발계획의 결과 60년대 후반부터 기초적인 소비재부문의 빠른 생산성 상승, 특히 식료품 관련 생산성의 향상 결과 식료품비의 부담을 현저하게 경감시키고 여타 부문에 대한 소비증가를 가능케 함으로써 전통적인 소비양식의 변화를 촉진했다.

한편 70년대 중반에는 1973년 「중화학공업화선언」을 계기로 중화학공업, 특히 중공업부문을 중심으로 내구제의 대량생산체제가 성립하여 내구소비제의 생산성이 크게 상승함으로써 전형적인 자본제적 소비양식의 확립을 위한 물적 토대를 갖추게 된다.

8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중심의 대량 생산체제에 기반을 둔 표준화된 가정용 내구제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주요 내구제의 보급율이 전계층적으로 빠르게 증가하였다.

이는 내구소비제 대량생산체계의 성립과 이 부문의 국내시장의 성장으로 대변되는, 소위 주변부 포드주의 사회의 특징이며, 자본주의 대량 소비문화를 가능케 한 독점자본이 등장한 효과이기도 하다.

60~7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가 노동력 재생산 구조의 자본주의화를 위한 기반정비의 시기로 규정되고,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의 시기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본격화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면, 87년 이후로는 소비 규모의 확대가 현저한 가운데 서비스부문에서의 소비증대가 가속되면서 이에 상응하는 생산구조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 개인적 서비스 부문에 대한 소비 욕구가 증대하고 소비패턴이 고급화되는 경향은 기존의 규격화된 대량생산 중심의 축적구조와 사회보장이 결여된 동원체제하에서 점차 축적조건의 약화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경제와 사회』봄호 참조). 이렇게 소비욕구가 소비재 생산성에 상용하지 않고 생산구조를 상화하게 된 데에는 기본적으로는 물적 토대에 기인하는 것이겠지만, 욕구의 과잉은 분명히 경제적인 영향 이외의 요소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제 「밖」의 요소들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유연적 문화의 힘이다.

이제까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소비문화의 형성과정을 검토하였는데, 이제 두번째 범주인 「민주주의」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보자. 박정희의 「청교도적」 수출생산중심 자본주의 붕괴에 이은 전두환 정권 하의 소비대중문화의 「자유화」바람과 87년 6월 항쟁, 노태우 시대의 내수위주 소비자본주의와 88올림픽 그 「선진」과 번영의 환영, 그리고 김영삼 문민시대의 국제화 정책은 대중문화의 확산과 시민사회의 역량을 강화하는 「제한적 민주화」의 가도를 달리며 「대중의 진출」을 가능케 했다.

특히 대중매체의 발전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통로의 확장과 시민단체들의 세력 확장은 대중문화의 민주적 형성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의 타진이기도 하였다.

나아가 여성의 진출과 환경문제의 대두, 그리고 UR 타결과 WTO 체제가 시작된 이후 그린라운드(Green Round)와 블루라운드(Blue Round)의 모색 등 새로운 진보운동의 순환을 위한 준비는 고무적인 환경변화이다.

이러한 변화국면은 새로운 민족개념, 새로운 인간개념, 새로운 정체성의 형태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진보운동은 또다시 새로운 연대, 새로운 주체형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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