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1주년 ㅡ 분단 한반도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 독일식 흡수 통합 한반도 적용은 무리 1980년대 말 동구전체를 강타한 자본주의화의 대격변 속에서 초고속으로 진행된 독일의 통일은 유럽통합과 탈냉전시대 평화 정착의 빛나는 상징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자본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징표로서 널리 선전되어 왔다.

독일 통일의 국제정치적 파급효과는 유럽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심대한 것이었으며, 특히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된 남·북한 통일의 대안으로서 독일식 흡수통일방식을 구상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통일된지 근 10개월이 지난 현재, 독일은 통일의 수해자인 서독과 그 피해자인 동독으로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동독의 경제적 붕괴와 실업위기는 분단의 깊은 골을 내적으로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스스로를 통일 독일의 국내식민지로 비하하는 동독인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천문학적 통일비용 부담에 대한 서독인의 노골적인 불만 등은 지역의 초강대국으로서 유럽 통합의 중심이 되려는 통일독일의 야심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로 존재하고 있다.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상편에 이미 실렸던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서독 독점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돼온 독일통일의 주·객관적 조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독일통일이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교훈을 얻고자 한다.

『독일인들은 민족의 이해와 진보의 이해가 마주치는 곳에서는 결코 민족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이 진보를 거역했던 곳에서는 언제나 민족적이었다』(엥겔스), 독일민족의 자기정체성은 군국주의적·팽창주의적 민족국가의 형성과정에서 완성되었으며, 2차대전 이후 동독돠 서독의 통일논의는 이에 대한 부정과 계승을 각각 그 특징으로 한다.

먼저 서독은 1966년 사민당주도하에 대연정 이래, 민족자립에 의한 독일인재통일 및 동독에 대한 불승인정책의 지속을 골자로 하는 통일원칙을 채택하였다.

이는 기능주의적 통합방식에 입각해 동서독간의 대화와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함으로써,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을 내부로부터 붕괴시켜 흡수통합하려는 것이었다.

반면 동독ㅇ느 초기에는 동독의 민족적정통성을 주장하며 사회주의적 통일을 지향했으나, 이후 1민족 2국가론을 거쳐 2민족 2국가론을 채택하고 통일의 필요성을 부정하게 되었다.

이는 독일이 사회주의적 민족과 자본주의적 민족으로 분리되었으므로 『해결되지 않은 독일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동독이 정통성을 주장했던 근거는 그것이 최초의 노동자·농민의 국가이고 반파시즘투쟁을 통해 성립되었다는 것이었으며, 이후 통일 자체를 부정했던 근거는 동독이 이미 사회주의 단계로 이행한 사회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물질적 토대의 취약성, 당내의 만연ㅎ나 관류주의 등에 의해 설득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반면 서독은 상대적으로 나치즘 잔재의 청산이 불철저하게 수행된 사회였으나, 70년대 이후 세계최고의 생산력을 갖춘 무역흑자국으로 부상했으며 의회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서독은 유럽공동체 내에서 강력한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이와같은 국내외적인 압도적 우위가 통일의 주도권을 서독의 손으로 넘겨주었던 것이다.

1970년대 세계적 데탕트 추세 속에서 서독은 『독일의 통일정책은 국제적 긴장완화의 추진과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현실적 외교정책에 입각해 함쇼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소련·동구와의 접촉 및 나토·미국과의 동맹관계 유지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서독은 전승국인 4대강국 (미·소·영·불)에 대해 서독이 유럽의 긴장완화와 안정ㅈ보장에 기여하고 있음을 주지시킴으로써 독일 통일에 대한 이들의 저항을 미리 방지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통일과정에서 2+4회담을 정식화하여 장래의 안보문제와 그 안에서의 독일의 위상을 협의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서독이 졸속한 통화통합조치까지 취해가면서 통일에의 행보를 서둘렀던 것도 국제적 역학관계상 좋은 시기적 조건ㅡ미소간의 신데탕트조류, 동구사회주의의 붕괴, 소련의 대독 불간섭 신호, 통일문제에 대한 유럽 각국의 결집된 대응문제 등ㅡ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치의 의도에서였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군사력을 제외한 제부문에 대해 절차 헤게모니를 상실해가고 소련 및 동구제국이 국내의 경제·민족문제로 인해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통일독일의 국제정치적 위상은 계속 높아지리라고 전망된다.

이미 독일은 자신과 유럽을 「운명공동체」로 간주하며 『두 독일국가는 민족통일 이후 하나의 독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유럽을 위해 노력할 책임이 있다』고 공인한 바 있다.

따라서 이후 독일은 유럽통합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미국·일본 등 비유럽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상호의존속의 경쟁」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나토에 잔류하거나 형식적으로 중립화되어 독일 중심으로 코메콘을 통합함으로써 전유럽의 단일시장화를 실현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전유럽공동체는 미·소의 영향력으로부터 매우 자유로운,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중심국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될 것이며, 그 내부에서의 독일의 입지 또한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독일 통일을 바라볼 때 항상 주의해야 할 점은 통일로 인한 대외적 성과와 대내적 문제가 엄연히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독일통일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조건이 한반도의 그것과는 판이하다는 사실이다.

동독 일방의 붕괴에 의한 통일의 결과, 1990년 3우러 동독총선에서 기민당에 표를 던짐으로써 통일을 앞당겼던 동독민중이 오늘날 통일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흡수통합이 결코 통일의 최선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유럽과는 달리 동북아 지역에는 사회주의 국가들(중국, 북한, 베트남 등)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으며,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또한 다소 그 강도가 저하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대립하고 잇다.

더구나 남한은 서독과는 달리 지역에서의 중심적 강대국으로 평가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앞으로 한반도가 걸어야 할 길은 독일식 흡수통일도, 탈냉정시대의 「냉전의성」으로 군사적 대치의 지속도 아닌 제 3의 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손정인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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