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축ㅡ외로운 냉전의 땅 한반도에서의 의미 <2> 신뢰구축과 군축 발맞춰 나아가야 90년 벽두부터 미국관리들과 남한정부에서 군축문제에 대하여 말문을 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작년 고위급회담 때 군축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40년이 넘도록 군축문제를 금기시하다가 군축방안까지 제기한 것은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니고 90년대가 군축의 세대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이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판단한 것이 큰 이유이겠지만 아울러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신데탕트 체제에서 이의해결을 위한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즉 군살빼기식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을 시행했는데 이러한 상황을 북한과의 협상과 연결하려는 구상이 남한정부의 군축논의에 불을 당겼다.

둘째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형성된 데탕트의 추세에서 동북아 군사구조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서 정치적 도덕적 명분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을 협상의 틀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했다.

남한정부의 군축 「선신뢰 구축, 후군축」을 핵심으로 하는 3단계 군축안이다.

결국 실질적인 군축은 신뢰구축이라는 이름으로 지연하면서 시간을 끌고, 북방정책과 비군사적ㅇ니 교류협력을 통하여 북한 고립화와 개방화를 가속하겠다는 것이 깔려있다.

남한의 군축안ㅇ느 정치적 군사적 신뢰구축을 통하여 불가침선언을 채택하고 이를 토대로 군비감축으로 나아가며, 군비감축이 진전됨에 따라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한다는 전형적인 「선 신뢰, 후 군축」의 방안이다.

북한은 과거와는 달리 신뢰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나, 유럽식 신뢰구축장치가 선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정부가 교류협력을 신뢰구축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에 비하여 북한은 팀스피리트 훈련이나 불가침선언 채택을 통해서 신뢰를 조성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즉 남한정부가 신뢰구축과 군축을 단계적으로 구분하고 있는 반면에 북한은 신뢰구축을 군축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럽식 신뢰구축 장치는 유럽군축협산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군사적 긴장과 대결 또는 서로의 군사활동에 대한 부정확한 판단의 결과 발생하는 군사대결을 완화하기 위해 취해지는 행동이다.

군대의 기동연습 사전 통고, 군사요원의 상호방문, 군사훈련 참관 등이 유럽식 신뢰구축장치의 주요한 내용이다.

남한의 군축한 가운데 신뢰구축단계에서 주장되고 있는 내용들이 모두 유럽식 신뢰구축장치를 모방한 것이다.

신뢰구축장치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신뢰구축이라는 것이 실제군축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인데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선신뢰구축만을 주장하는 것은 분명 설득력이 없어보인다.

유럽에서 군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신뢰구축장치가 선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르비의 일방적 군축과 유럽평화운동이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남북한의 당국과 민족민주운동세력은 주지해야 할 것이다.

한편 실제군축의 내용에서도 북한은 외국군의 철수화 비핵지대화를 포함하고 있으나 남한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병력감축에 있어서도 북한은 병력중심의 상호균형감축을 주장하며 아울러 무기의 질적개선을 반대하고 있으나, 남한은 병력이 앞선 쪽이 먼저 감축하여 병력이 동수를 이룬 다은 균형감축을 주장하고 있고 무기의 질적 개선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즉 남한은 병력수에서 우위에 있는 쪽이 먼저 열세에 있는 쪽과 같은 수로 줄이고 그 다음에 같은 비율로 줄일 것을 주장하고, 북한은 감군을 합의한 때로부터 3단계에 걸쳐서 병력을 줄여나가 최종적으로 쌍방의 10만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줄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10만으로의 감군은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것이다.

그리고 남한은 계속적으로 군현대화계획을 추진하면서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군사력 증강을 통한 군축이라는 모순을 내포하게 된다.

북한의 군축안도 10만 감군의 근거가 애매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완벽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언론과 민자당 내에서도 북한 군축안 수용주장이 심심찮게 일고 있는 것처럼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주한미군철수를 즉각철수에서 남북양쪽의 감군과정에 맞춰 철수하자고 주장한 것이나 군사연습에 사전통보 등 남한이 과거에 주장해온 것을 수용한 듯한 모습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필자는 여기서 세부적으로 군축방안을 제시할 수는 없으나 몇가지 기본원칙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군사적 긴장의 한 당사자인 미국과 책임있는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보장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것과 함께 주한미군은 철수하여야 한다.

핵무기는 민족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이므로 즉각 철수해야 하며 군사력의 증강이나 신무기의 도입을 규제하는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군축에 대한 상호신뢰를 확보하는 길이며 세부적으로 신뢰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는 원칙을 확인한 후라면 급속도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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