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9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전교조의 깃발이 오른지 2년을 맞아 그간 전교조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전조 신문사 편집국을 방문햇다.

당산동에 위차한 신문사는 딱딱한 의자와 책상이 놓여진 사물실이 아니라 뜻밖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는 온돌방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신문국장 이진철씨(전미린여고교사)는 친절히 방석을 내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교조의 전신인 전교협당시부터 신문은 발간되었는데, 전교조 출범을 계기로 전교조신문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죠』라고 이시는 전교조신문의 출발에 대해 말한다.

89년 전교조의 출범직부터 무더기징계와 정부의 회유책으로 조합원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그 극복으로 구체적실천방향 이를테면 서명운동, 광고투쟁을 전교조는 전개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교조신문은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이라는 전교조의 지향 에 걸맞는 구체적 실천활동을 꾸준히 펴왔다.

『전교조의 조직이 곧 저희 신문제작의 조직입니다.

즉 피라미드형처럼 가장 아래의 각 학교중심의 통신원망과 그 위의 각 도를 중심으로 한 지분의 주채기자들, 그리고 상지분의 추재기자들, 그리고 상부의 서울 편집부의 체례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고 이시는 전교조신문의 전국적·조직적 규모를 자세히 설명한다.

즉 전교조 조합원인 현장·해직교사들이 각 학교, 주변지역의 소식들을 매개하는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각 지부에서도 지역소식지를 발간할 만큼의역량을 과시하고 잇다.

『전교조신문은 전교조의 전반적 상황들을 담을 뿐 아니라 각 학교 지역의 주민들, 노동자들의 신문으로 연대를 맺어나가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라고 이씨는 의의를 설명하며, 지난 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건설사건 당시에도 서해과학 연구단지를 세운다는 명분으로 핵폐기물을 몰래 처리하려던 정부의 의도를 폭로해내는 속보를 그곳 지회가자들이 찍어내 주민투쟁의 촉발제에 한몫이 되었다고 . 이렇게 광범위한 조직이기때문에 각 지역간의 역량차이고 약간씩 있고, 이런 부분을 보완하고 신문의 구체적 내용을 의논해 나가는 과정으로 월기획회의를 마련했다 하며 『각 도 지부의 주재기자들과 서울의 편집부원, 상근기자들이 모여 때론 밤을 새우기도 하며 계획을 짜나갑니다』라고 덧붙있다.

10일에 한번씩 발간되나, 이번 강경대군사건때에는 2번씩 속보를 낼만큼 신속성과 능동성을 보여준 전교조 신문은 그 통신원망이 곧 신문배포와 수급망이며 개인회원으로 후원금을 지원받기도 한다.

『그간 정부의 당근과 채찍이라는 양면적 정책소에서 밑둥부터 흔들렸다고 사람들은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번 교사들의 시국성명은 전교조가 더욱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죠』라고 이씨는 힘주어 말한다.

『며칠전 스스의 날도 아이들이 찾아왔었지요. 그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일해야 할거라고 다시 마음 먹었습니다』라고 말을 맺는 이씨의 모습은 사무실벽에 붙어있던 이 시만큼이나 활기차보였다.

「선생님께 우송할 전교조신문을 접는다.

퇴근길 사무실로 출근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살아 펄떡이는 화자들 사무실에 훨훨 날아다니는 웃음. 무청같은 전교조의 목소리를 갈피마다 단단히 집어넣어 꼭꼭 눌러접는다…」 김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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