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진상규명만이 고인의 넋 달랠 길"

「재야연구원 셋방서 사망」. 얼마전 신문지상 한 귀퉁이에 자리잡았던 짤막한 기사이다.

지난 27일(토) 서울시 성북구 장위2동의 자취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한겨레 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영환씨(84년 고대 불문과 졸)는 29일(월)부검결과 87년 대동맥 일부를 인공동맥으로 바꾸는 심장수술을 받았던 곳이 파열돼 숨진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으나 단순히 자연사로 보기엔 의혹의 여지가 많다.

이 사건이 명지대학교 강경대군(경제·1) 타살사건에 이어 연일 보도되고 있는 부상 및 분신사례에 묻혀 크게 부각되진 않았으나, 재야연구계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진상규명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준비하고 있는 박종덕씨(한겨레 사회연구소 연구부장)를 찾아가 보았다.

김영환씨의 삶이 그간 연구의 사회적 공헌도를 볼때 단순한 개인적 삶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기에 의문사 진상규명 작업이 단순히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는 박씨는 『고인은 88년도에 한겨레 사회연구소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한미군사관계, 평화군축문제, 남북관계, 통일문제 등에 대한 연구로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라고 이제 고인이 된 김씨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최근 김씨는 평화군축에 관한 논문집을 만들기 위해 양심선언을 한 수배전경·군인들을 만나 이들의 증언을 모으는 작업을 해오던 중이었다고 한다.

또한 본지에도 김씨는 학생의날 특집기획「냉전의 섬 외로운 한반도」 「한미안보협력」관련기사를 여러차례 기고했고, 평화군축문제에 있어서는 관변학자를 능가하는 활발한 연구 성과물을 선보였다는 점등에서 그의 업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고인의 활동과 죽음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증거가 없긴 하지만, 사체 발견 당시 현장을 살펴본 형사들의 진술과 부검결과를 통해 추정된 사망시간은 25일 저녁에서 늦어도 26일 오후 이전인데 반해, 판정된 사망시간과 당시 현장상황과의 모순점이 많아 의혹을 떨쳐버릴 없습니다』라고 밝히고 박씨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의문점으로 꼽았다.

부검결과 추정된 시간에 사망했다면, 집주인과 현장검증한 형사들이 진술한 26일(금) 저녁부터 27일(토) 아침까지 방에 불이 켜져 있었고 TV가 켜져 있었으며 커피포트에 물이 끓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체발견당시 김영환씨 행동은 평소와는 다른 점이 많았을 뿐더러 25일(목) 밤 11시 35분에서 자정사이 김영환씨 집어귀에서 십여명의 전경들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박씨는 김씨가 죽은 후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거나 최근 기무사가 「전경해체 투쟁위원회」에 대한 내사에 들어간 것과 관련, 김영환씨도 조사대상이 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도 하고 있으나 모두 심증단계일 뿐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앞으로 대책위가 결성되는 대로 김영환씨의 주변인물로부터 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철저한 진상규명작업을 벌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대책위 사업구상을 설명하며, 박씨는 『모든 의문점들을 적극적으로 밝혀낼 때만이 의로운 삶을 살아온 한 청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고 덧붙인다.

아직은 베일에 싸인 채 미궁속을 헤매는 고인의 의문사. 올바른 진상규명으로 민주화운동에 쐐기를 박는 행위들을 철폐하는 길만이 못다한 고인의 민주화염원을 달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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