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 통일관념 재정립할 때

  실로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났다. 최초로 북한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으며, 최초로 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언론을 장식한 각종 화려한 ‘최초’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들었다. 역사의 한 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대학보 5월 발행이 시작하자마자 관련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흥미롭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지면에 남기면 그것대로 뜻 깊을 것 같아서였다. 통일학연구원장 김석향 교수님도 만났고, 교수님을 통해 학내 탈북 학생과 인터뷰를 할 기회도 얻게 됐다. 들뜬 마음에 친구들과도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다.

  20대 학생들이 통일에 대해 할 법한 뻔한 이야기들이었다. 누군가는 통일이 되면 세금을 많이 내서 싫다고 했다. 누군가는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고, 반드시 통일이 돼야 한다면 나 죽으면 하라고 했다. 물론 모두가 통일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는 통일이 지긋지긋한 취업난이 끝날 거라 침 튀기며 주장했다. 육로로 유럽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게 믿겨지냐며 들뜬 필자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 취재를 진행할수록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겠다. 그 어떤 세대보다 똑똑하고 뛰어난 공감능력까지 갖춘 20대다. 이들이 어떻게 분단선 너머 사람들 삶에는 그토록 무감각할 수 있을까. 교수님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온 몸을 관통했다. 내 안의 새빨간 이기심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분단선 너머의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살고 통일이 되지 않으면 죽는다. 고작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일의 이점으로 꼽고 세금 때문에 통일을 반대하는 것. 그러한 이유로 통일을 반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북한 사람들은 평생 누리지 못할 안정된 삶의 특권이었다. 고통 받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기만이자 같은 인간으로서 도덕적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기도 하다.이제는 젊은 세대가 통일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시기가 온 듯하다. 우리는 오직 남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북한과 비교 불가한 풍요를 누리며 살아왔다. 안정된 삶의 특권을 누려왔으니 조금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운 나쁘게 분단선 너머 태어난 사람들에게 통일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북 관계도 술술 풀리고 있는 지금, 남한 청년들이 화해 분위기를 즐기고 각종 유머로 소비할 동안 북한이탈 학생들은 어쩌면 내 가족이 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던 한 끗 운발의 차이를 당신이 느끼길 바라며 이대학보와 인터뷰한 본교 탈북 학생의 말을 옮겨본다. 

  “저는 남한 대학생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도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태어났더라면 통일에 반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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