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지하철 대부분의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공용이었다. 성별 이분법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성을 고려한 ‘성중립 화장실’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장애인의 성을 무시해서였다. 장애인을 무성적 존재로 여기고, 성별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남녀가 뭉뚱그려졌던 장애인 화장실은 여자 장애인 화장실과 남자 장애인 화장실로 구분됐다. 장애인권이 ‘조오금’ 나아졌다.

  계속 화장실 이야기를 해보자. 장애인용  화장실은 사실 장애인 ‘전용’ 시설이 아닌 ‘겸용’ 시설이다. 비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공중화장실 줄을 길게 서면서 장애인용 칸만 비워놓는 현상을 많이 접한다. 겸용 시설을 장애인만 이용하는 시설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이용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장애인용’ 화장실이라는 작명도 그렇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인식과 물리적 환경이 어우러져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손잡이가 설치된, 바닥이 미끄럽지 않은, 출입구와 내부 공간이 넓은 화장실은 누구에게나 편하다. 그러나 ‘장애인용’ 화장실이라고 이름 붙는 순간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 장애인의 화장실 이용 편의를 보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분을 강조한다.

  비장애인, 장애인 분리를 유도하는 화장실만 보다 지난 달 한 휴게소에서 새로운 이름의 화장실을 접했다. ‘다목적 화장실’이다. ‘여자 다목적 화장실’에는 여성・장애인・노인・임산부・아기 5종류의 픽토그램이, ‘남자 다목적 화장실’에는 남성・장애인・노인・아기 4종류의 픽토그램이 붙어있다. 장애 비장애 구분을 옅게 하는 동시에, 누구든 편하게 목적에 따라 이용하도록 한다. 또한 육아가 여자 남자 공통의 일이라는 점까지 고려했다. 살면서 본 화장실 중에 가장 멋졌다.

  요즘엔 이동약자・교통약자라는 표현을 쓰는 곳도 늘어났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이보다 장애인들 간 차이가 더 크다고 할 정도로 장애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시설이 지금까지 ‘장애인용’이라 뭉뚱그려져 불려온 건, 장애인이 남녀 구분 없이 뭉뚱그려진 것과 연결된다. 장애인 내 서로 다른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일하게 명명하는 것 말이다. 이동약자 시설이라 하면 전보다는 구체화된 명명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동약자라 함은 임산부?영유아동반자?노인 등을 포함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차이가 강조되지 않는다. 참고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동약자는 전체 인구의 25%에 달한다.

  전보다 나은 방향을 고민한다. 약자・소수자는 어떤 집단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해지므로 그때그때 새로운 지점을 고민해야 한다. 소수자의 다양성과 권리를 고려하는 것이 비소수자와의 차이를 견고히 하지 않도록 연결되는 움직임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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