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UF 칼스테이트 풀러튼 대학교

  브라질에서 온 한 교환학생이 말했다. “내가 생각했던 교환학생 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어” 그 말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하늘, 그 아래 들려오는 웃음소리 속 한가로이 교정을 배회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나. 내가 생각한 타지에서의 캠퍼스 라이프는 그러했다.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매우 값지게 생각하는 나는 한국에서처럼 전투적으로 생활하기보다는, 한 템포 여유를 갖고 타지의 문화를 즐기고 싶었다. 친구도 많이 사귀어서 자연스럽게 영어도 늘리고자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현실은 꿈을 배신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노스캐롤라이나로 1년 간 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회화 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미국의 공기는 그 때와 달랐다. 그 시절, 작은 꼬마 아이들은 똑 부러진 대학생으로 성장해 있었고 그만큼 어려운 단어와 화법을 구사했다. 말하는 속도도 굉장히 빨라서, 들리는 몇몇 단어로 의도를 유추해내야 했다. 자신감 하락으로 가뜩이나 작은 목소리가 더 작아지는 일은 덤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내가 꿈꾸는 교환학생 라이프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친구를 사귀어야 했는데, 선뜻 말을 걸기가 너무 어려웠다. 거절당할 까봐, 무시당할 까봐, 문화 차이로 말 실수를 할 까봐, 인종차별주의자일 까봐, 영어를 못하는 게 티 날 까봐…. 갖은 이유들이 나를 순식간에 겁쟁이로 만들었다. 그런 생각들이 그저 그런 기우는 아니었던 것이, 그들 중 다수는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우월감에 젖어 해외, 특히 동양 문화에 관심이 없는 것은 물론 타지 여행 경험이 전무했다. K-pop이 붐이라고는 하지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해, 대부분은 어쩌다 한번 쯤 들어 보기만 했을 뿐 아는 것이 없었다. 어딜 가든 한국은 후진국 취급을 받았고,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도 그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를 한 단계 아래 쯤의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온 지 두어 달을 넘긴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조금씩 내 능력을 인정해주고 순수하게 다가와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제 한 수업의 중간평가 결과가 나왔는데 발표 점수가 B-였다. 하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총 13개 항목 중 발표를 제외한 12개에서 만점을 받았고, 발표 점수의 높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A-가 떴다. 매 프로젝트가 끝나면 모르던 사람들도 다가와 작품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여기선 절대평가 제도 아래, 모두가 경쟁이라는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 실력이라는 평등한 잣대로 진실된 격려를 나눈다. 한국에선 최고가 되기 위해 학점 욕심에 수동적으로 이끌려 노력하는 나였다면, 여기서의 나는 동료들의 격려 속에서 즐거움을 꾸며내지 않아도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다.

  또 다른 변화가 있다면 바로 나 자신의 변화일 것이다. 마인드 컨트롤로 일시적인 단단함을 만들어내는 내가 아닌, 진짜로 단단하게 연단되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 그 동안의 부딪침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다가올 내일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고, 한층 성장한 나 자신과의 조우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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