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우월주의 조장하는 예능 포맷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지 반세기하고도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허나 여전히 제국주의 시대 수혜 국가의 후손들은 그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와 화합이 중시되는 올림픽에서 벌어진 일이다. 21일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팀추월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얀 블록하위선은 느닷없이 “이 나라에서 개들을 잘 대해달라(Please treat dogs better in this country)”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블록하위선의 발언은 그가 지닌 사상, 즉 서구권 백인의 사상이 당연히 우월하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그는 한국 문화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한다.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섭취하게 됐는지, 최근 한국에서 개고기에 대한 어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등 그가 해당 사안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사실 알 필요가 없기도 하다. 그는 무지에 대한 대가로 침묵을 지키면 됐으나, 자신이 믿는 서구권 백인의 사상이 당연히 동양의 것보다는 우월하다고 판단했기에 저런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는 이러한 백인들의 잘못된 믿음을 스스로 재생산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한 경향은 특히 미디어에서 두드러지며, 그 중심에는 최근 유행하는 백인을 앞세운 예능 포맷이 있다.

  MBC every1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서구 우월주의가 낯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에는 관심도 없던 서구권 백인들에게 직접 항공비, 여행비용, 출연료까지 제공하며 TV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까지 준다. 그들이 방송에 나와 하는 일은 간단하다. “여긴 프랑스와 다르네”, “영국은 이렇지 않은데”라며 백인의 잣대로 한국 문화를 판단해주면 된다. 그것이 칭찬이든 비판이든, 중요한 건 한국의 모든 것이 백인의 기준으로 평가되고 그것이 정당하다는 듯 방송에서 송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을 가능케 했던 JTBC의 ‘비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청년들의 담론을 들어본다는 미명 하에 기획된 프로그램이지만, 사실 동아시아 2개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제1세계 선진국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으로 마음껏 한국을 평가하고 칭찬했으며, 시청자들은 그 평가에 가슴 졸이다가 칭찬에 행복해 했다. 참 기이한 광경이다.

  한 집단의 사상이 평가 기준이 된다는 것은 그 집단이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평가 기준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권력관계를 수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TV에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와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서구권 백인과 우리 간의 권력관계를 인정하는 꼴이다.

  무려 올림픽이라는 자리에서 서구 우월주의를 거리낌 없이 내비친 블록하위선의 경솔함도 놀랍지만, 그의 사상과 다름없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송되는 한국 사회도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제국주의 시대의 사상을 굳이 우리 손으로 재구성할 필요는 없지 않던가.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