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 ‘김지영’에게 건넨 위로… “오래 걸려도 더 좋아질 것”
이화의 ‘김지영’에게 건넨 위로… “오래 걸려도 더 좋아질 것”
  • 전혜진 기자
  • 승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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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2년생 김지영」 작가&편집자 선배와의 만남 열려
▲ 15일 오후12시30분 학생문화관 소극장에서 ‘「82년생 김지영」작가&편집자 선배와의 만남’이 개최됐다. 사회자, 조남주 작가, 박혜진 편집자(왼쪽부터). 김수연 기자 mangolove0293@ewhain.net

여성으로서의 경험 나누며 교감…

공감을 통한 사회적 경험으로의 확장

 

  “이 책을 처음 읽고 든 생각은 누구의 얘기도 아니지만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이었어요”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의 첫 독자이자 편집을 맡은 박혜진 편집자는 15일 열린 ‘82년생 김지영 작가&편집자 선배와의 만남’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소설 속 가상 인물 김지영의 경험이 곧 나의 경험이고 사회의 경험”이라며 이 소설은 한 개인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에피소드임을 설명했다.  

  현 시대 한국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사회·01년졸)와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국문·10년졸)가 지난 15일 이화를 찾았다. 이화미디어센터가 주최하고 본지가 주관한 이번 선배와의 만남 행사는 이화인 약 250명이 학생문화관 소극장을 가득 메우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본지 기자가 사회를 맡은 행사는 조 작가와 박 편집자가 함께 소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두 사람의 현재 삶과 재학 시절 이야기까지 나누는 북 콘서트 및 좌담회 형식으로 개최됐다.

  조 작가는 “이 소설이 이렇게 많이 언급되고 읽히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의뢰를 받아 쓴 소설이 아니라 집필 후 직접 출판사에 투고했던 작품이라, 출간만 됐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 편집자 역시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많이 팔리겠다는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이 개인적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여성으로서의 경험, 즉 사회적인 경험으로 인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간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출간 배경을 밝혔다.

  이어 소설의 집필 과정, 작가의 의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소설에 개인적 경험이 얼마나 녹아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조 작가는 “여러 에피소드 중 하나를 명확하게 뽑기는 어렵지만, 비슷한 상황과 감정은 나 역시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동갑내기 사촌 남동생이 우리 집안 모든 아이들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기억, 중고등학교 시절 들었던 성희롱 발언 등은 김지영씨와 내가 공유하는 비슷한 경험”이라고 답했다.

  또 “출산을 한 뒤 전업주부가 돼 느꼈던 감정도 김지영씨와 매우 비슷하다”면서 “생생한 묘사를 위해 취업준비생 카페나 육아 카페 등 인터넷 카페에서 본 에피소드를 참고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씁쓸하다. 남자 정신과 의사는 김지영 씨가 겪는 증상을 산후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지는 매우 전형적인 사례라고 결론 내리고, 김지영 씨는 끝내 완치되지 못한 상태로 소설이 끝난다.

  이러한 결말을 내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는 조 작가는 “김지영은 현실에 꼭 있을법한 인물인데, 어려운 상황을 다 극복하고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된다면 여전히 비슷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독자들을 좌절시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결말을 그렇게 냈다”고 전했다.

  박 편집자는 “책을 덮었을 때 독자가 어떤 마음 상태와 질문을 가지고 소설을 마무리짓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 소설에서는 마지막에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이 더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여성으로서의 경험, 이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두 연사와 관객들 간의 교감도 이뤄졌다. 특히 약 40분간 이어진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82년생 김지영」소설 내용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성이기에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 고민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질문자의 울먹임에 자리에 모인 학생들 역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화 정체성’이 현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질문에 조 작가는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연대했던 경험이, 그렇지 않은 사회에 나왔을 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총장, 교수, 하다못해 동아리 대표까지 대부분 여자인 환경에서 공부했기에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열띤 질문과 답변이 계속됐다.

  한 학생은 “페미니즘을 배운 이후로 가족이나 지인들로부터 ‘왜 이렇게 예민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82년생 김지영?을 추천해주고는 한다”며 “얼마 전에는 엄마께 이 책을 드렸는데 공감 받지 못해 슬펐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했다.

  조 작가는 “가까운 사람을 직접 변화시키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며 “가까운 곳에서의 실천도 좋지만, 먼 곳부터 시작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주변인을 내가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죄책감보다는, 멀더라도 변화에 기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편집자는 “긴 투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1~2년 안에 바뀔 것을 기대하기 보다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삶의 형태인 만큼 멀리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질문에 대해 박 편집자는 “최근에도 여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들을 더 많이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82년생 김지영」이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도 그동안 소외되고 주변화됐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주제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작가는 “오래 걸릴지언정, 분명 더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며 “내 삶보다 딸의 삶이 여성으로서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는데,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는 선구자가 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그런 흐름에 무임승차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민영(국문·17)씨는 “「82년생 김지영」은 나를 일깨운 책”이라며 “오늘 행사를 통해 내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일들이 비단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겪었던 공동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