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대를 가더니 해가 갈수록 여성스러워지는구나, 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이번 생일에도 어김없이 받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눈에 불을 켜고 쏘아붙였겠지만, 올해의 나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그래, 너는 그런 말을 할 것 같더라.’ 하며 웃어넘겼다.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네일아트와 원피스를 좋아한다.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보면 그냥 넘어가질 못하고, 복숭앗빛 블러셔를 얹은 볼과 밝은 글리터를 얹은 축 처진 눈매를 좋아한다. 이러한 나의 취향을 오롯이 나의 개인적인 선호라고 할 수 있을까? 미디어에서 수없이 재현되는 20대 여성의 이미지-“남자친구가 반한 여친룩”, “군살을 잡아 주는 캐주얼 페미닌룩” 따위의 광고 문구를 떠올려 보자-로부터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만약 남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남자로 태어났어도 주기적으로 손톱과 눈썹을 다듬는 일에 돈을 쓰고, 매일 아침 체중계 위에 올라가 내 몸무게가 어떤 숫자로 시작하는지에 연연했을까. 외출 전마다 한 시간에 걸쳐 화장을 하고, 소개팅 전날 55사이즈의 꽉 끼는 옷에 몸을 욱여넣으려다 진땀을 빼 본 적이 있었을까.

  나의 화장 및 패션 취향부터 ‘화장’이라는 행위 자체까지 전부가 코르셋임을 인지하게 되자 일상생활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레드 립스틱과 오렌지 립스틱 사이에서 신나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오늘은 어떤 디자인의 족쇄를 찰지 고민하는 노예의 모습 같아서 안쓰러웠다. 앎과 삶이 균열을 빚는 지점에서 나는 방황했다. 이러한 고민에 빠진 나에게 몇몇 친구들은 애정 어린 조언을 주었다. 그것이 코르셋임을 인지한 것 자체만으로도 네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냐고. 그러니 굳이 코르셋을 벗으려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이에 만족하자니 여전히 그저 행복하고 게으른 노예가 된 기분이다. 이에 요즈음은 색조화장품을 두 개 이하로 쓰기, 화장이 귀찮은 날은 과감하게 거르기 등 나름의 소심한 반항을 실천하고 있다. 아무도 알아주진 않지만 양심의 가책을 한결 덜어낸 것 같아서 좋다.

  서민 교수는 한 교육방송 프로그램에서 화장에 대해 ‘귀찮을 때 건너뛸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것도 억압’이라고 말한다. 에머 오툴은 그의 저서 <여자다운 게 어딨어>에서 ‘(화장이)개인적 선택으로 하는 일인지 강압에 의해 하는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잠시 다른 연기를 해 볼 것’을 권한다. 나의 두서없는 생각타래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화인들에게 공감과 더불어, 실현 가능한 대안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선물했길 바라며 오늘은 이만 생각을 접는다.

 

2017년 11월13일(월)일자 1548호 10면 여론광장 ‘뷰티, 그 애증의 코르셋에 대하여’가 지면상의 이유로 부분 편집, 삭제됐음을 알립니다. 전문은 인터넷 이대학보(inews.ewha.ac.kr)과 페이스북(facebook.com/ewhaweekly)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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